경허법어 경허선사

상여 喪輿 행렬을 만나다. 경허선사 鏡虛禪師

성천하지미미자 2023. 2. 25. 07:49

귀신의 문 빗장을 부셔버린 한 방의 방망이여,

생사열반 生死涅槃 다시는 묻지를 마라.

종래 從來로 정오 正午가 삼경 三更이더라.

 

상여 喪輿 행렬을 마나다.

 

경허스님은 어느 날 만공스님과 함께 길을 떠났다.

어느덧 점신시간이 되었으나 길은 첩첩산중이요 인가는 눈에 띠지 않아 시장기가 들었다.

산 굽이를 돌아서서 산 마루턱에 도달하였을 때 저 쪽에서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있었으니

그 곳에 오색포장과 만장 輓章들이 늘어서 있었다.

장사 지내려고 상여의 행렬이 고개마루에서 쉬고 있는 중이었다.

스님은 만공스님을 데리고 장례행렬 앞으로 다가가서

상여 앞에서 합장을 한 뒤 음식을 청하셨다.

시장하니 먹을 것좀 주십시요.

한 상여꾼이 장난스레 말을 하였다.

장사 지내러 가니 술밖에 더 있나요 ?

스님은 태연히 술이 있으면 술을 고기가 있으면 고기를 주시오.

사람들이 모두 눈을 크게 떴다.

한 사람이 빈정거리듯 산쪽을 바라보며 말하기를 아따 참 별 중을 다 보겠네.

점잖게 생긴 회장 會葬꾼이 말하기를

아니 대사께서 어찌 술을 달라 하시오 ? 곡차라 하지 않고,

스님은 그를 보며 대답하였다.

시장한데 한 잔 하면 되지 굳이 다른 말 할게 뭐 있겠오.

사람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

그렇다면 .....

하고 술 한 대접을 따라서 스님께 드렸다. 막걸리였다.

스님이 술잔을 받지 않고 손을 내저으며 잔이 너무 적습니다 차라리 바가지나 동이로 주시오,.

그러자 기가 막히는 한편 기괴한 흥미를 느낀 한 군중이

어디 동이째 줘 봐,.

하고 술이 가득 담긴 동이를 들어 경허스님 앞에 내 놓았다.

스님은 술 동이를 들고 단숨에 비워 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던 상주 喪主의 마음이 움직였다.

틀림없이 도가 높은 대사라는 생각이 들어

그는 상장 喪杖을 짚고 스님 앞으로 가서 공손히 물었다.

무애행을 하시는 도가 높은 스님들 같사온데 스님의 자비로운 마음으로 망인 亡人이신 우리 아버님 명당 明堂 하나 잡아 주세요,.

스님은 느닷없이 큰 소리를 버럭 질렀다.

명당은 써서 뭣에 써 ? 죽으면 다 썩은 고기 덩어리 밖에 아닌 것을 !

극진히 대접을 했음에도 이 말을 들은 상주들은 별안간 주정꾼의 주사처럼 표변한 걸승 乞僧의 말투에 어이가 없어 울화가 치밀어 모두 달겨 들 형세였다.

둘째 셋째 네째 우루루 몰려들어 험악스런 분위기였다.

아니 어디서 떠돌던 중놈들이   .....

상장 喪杖을 들어 후려칠 기세였다.

네 이놈들 ! 하며

스님은 떡 버티고 두 팔을 걷어 올렸다

스님과 만공스님은 육척 六尺이 넘는 건장한 체구로 위세가 당당하였다.

순식간에 일어난 뜻밖의 사태를 회장 會葬꾼들은 그저 멍청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 때 맏상주가 아우들을 밀치고 앞으로 나와

스님 말씀이 지당하십니다.

남화경 南華經(莊子)에도 있듯이 사람이 죽으면 까막까치나 구더기의 밥이 되는 것입지요.

우리들이 미흡해서 알아뵙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자손 된 입장에서는 그렇지 못해서요,.

상주는 행상길을 재촉해 떠날 차비를 하고

잠자코 있던 경허스님께서는 중얼거렸다.

모든 것은 다 허망할 뿐이니 죽고 사는 것 원래 그러하므로

만약 모든 것이 참으로 허망한 줄 안다면 그대들도 참 모습을 볼 수 있을 걸세,.

생멸 生滅의 실상 實相을 設할 즈음에 상여 행렬은 고개를 넘고 있었다.

고개 너머로 상여 행렬의 만가 輓歌소리가 멀어져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