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허선사 약보 鏡虛禪師 略譜 만해 한용운 찬 卍海 韓龍雲 撰
스님의 성은 송씨이고 법명은 성우 처음 이름은 동욱이요 법호는 경허로 여산송씨이다
지금으로부터 94년전 기유 8월 24일 전주 자동리에서 탄생하셨는데 아버지는 두옥이요 어머니는 밀양박씨이다
태어난 뒤 사흘동안 울지 아니하니 사람들이 다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일찌기 아버지를 여의고 9세에 어머니를 따라 서울로 올라와서 경기도 광주군 청계산 청계사에서 계허대사에 의해 머리를 깎고 계를 받았다
그러나 빈 바리때로 운수행각을 하려 하였으나 항상 나무를 지고 물을 길어 부처님과 스승을 섬기는 책임으로 소임을 다 하였다 실은 글을 읽을 시간도 없었다 14세때 마침 한 선비가 절에 와서 여름을 지날적에 여가로 글을 배웠다
글을 보면 외우고 듣는 대로 뜻을 해석할 만큼 문리가 터져 진취가 있었다
얼마 안가서 계허스님이 속세로 환속하면서 스님을 크게 성취시키지 못한 것을 아쉬워 하면서 편지를 써서 게룡산 동학사 만화강백에게 추천소개하였다 스님은 만화강백을 모시면서 일대시교를 수료하였다
공부하는데 느리지도 너무 빠르지도 아니하였으나 성취가 남이 열번하면 나는 백번을 하고 남이 백번을 하면 나는 천번을 연습하여 열심히 습득을 하니 내전과 외전에 다 정통하여 이름이 팔도에 떨쳤다
23세때에 동학사에서 개강하여 강설하므로 사방에서 학인들이 구름처럼 몰려왔다
31세때에 여름에 예전에 계허스님의 사랑을 잊을 수 없어 의리를 생각하여 찾아 뵙고자 대중들에게 알리고 길을 떠났다
길을 가던 도중에 모진 풍우를 만나 마을에 들어가 신세를 요청하자 가는 곳마다 내쫓겼으며 그 동네 수십호를 찾았으나
집집마다 받아주지 않아 내력을 물으니 말하기를 지금 염병인 콜레라가 창궐하여 걸리기만 하면 다 죽으니 받을 수 없다
하니 스님은 마음이 떨리고 죽음의 절벽에 다다른듯 학문으로 공부하는 것이 죽고 사는 문제에는 전혀 해당이 안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 바로 발심하여 동학사로 돌아와 학인들을 해산하고 문을 닫고 단정히 앉아 오로지 영운선사의 화두 려사미거 마사도래 당나귀의 일도 가지 않았는데 말의 일이 닥치는구나의 화두를 참구하면서 다리를 송곳으로 찌르고 머리를 들이받아 수마인 잠을 쫓아가며 용맹정진 한 생각이 순일하여 은산철벽같이 하였다
이렇게 석달이 되자 공부가 익어가고 하루는 어떤 스님이 묻기를 소가 되어도 고삐 뚫을 코구멍이 없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 묻는 말에 대지가 가라앉고 천하대지와 함께 나를 잊으므로 백가지 천가지 법의 문이 열리고 무량한 묘한 가르침 뜻이 단박에 얼음녹듯 녹아내렸다
때는 기묘년 겨울 11월 보름께였다
이 때로부터 육신을 초탈하여 매사에 걸림이 없이 마음은 자유롭고 유유자적하였다
32새 때의 일이다
홍주 천장암에 머물며 하루는 대중에게 설법할 적에 특히 전등의 연원을 밝히되 스스로 용암화상의 법을 이어 청허 서산대사 12세손이며 환성의 8세손이라 하였다
그 뒤로 20년동안 홍주 천장암과 서산 개심사와 부석사 등지를 왕래하며 때로는 마음을 고요히 하고 때로는 대중을 위하여 설법하며 크게 선풍을 떨쳤다
51세때에 합천 해인사에 가니 마침 국왕의 칙명으로 대장경을 인쇄하는 불사와 새로 수선사를 설치하는 불사가 있었는데 대중이 스님을 추대하여 법주로 모셨다
54세에 동래 범어사의 금강암과 마하사에서 나한전 개분불사 증명으로 모셨으며
56세에 오대산및 금강산을 순례하고 안변의 석왕사에 이르러 오백나한 개분불사에 증명으로 참여하였다
그 뒤로 세상을 피하고 이름을 숨기고자 갑산 강계등지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스스로 호를 난주라 하고 머리를 기르고 선비의 유관을 쓰고 바라문의 몸을 나투시어 만행의 길을 닦아 진흙에 뛰어 들고 물에 뛰어 들면서 인연따라 교화하였다
64세 되던 4월 25일에 갑산 웅이방 도하동에서 입적하시니 법랍이 56세였다
위의 약보는 자세한 것은 알 수 없고 다만 뒷 사람이 기록한 일부분과 또는 내가 평소에 들은 바 단편을 모았는데 혹은 결함이 되고 빠진 것이 있기 때문에 간략한 략보라 한 것이다
읽는 이의 양해를 바란다
한용운 씀
경허선사 약보 鏡虛禪師 略譜
師, 姓, 宋氏, 法名, 惺牛, 初名,東旭,號,鏡虛,礪山人也 距今九十四年前,己酉八月二十四日生于,全州自東里,父,斗玉,母,密陽朴氏,分娩後,三十日不啼,皆稱異,早喪其父,九歲時,隨母上京,投廣州郡淸溪寺,依桂虛大師,祝髮受戒,雲水蕭然,衣鉢一空,
嘗以負薪汲水,供佛奉師,爲己任,未遑讀書,十四歲時.適有一士人,寓寺過夏,隨하就學,過目成誦,隨聞解義,文理大進,.未幾,
桂虛師還俗,惜師之未能大成,以書薦師,于鷄龍山東鶴寺,萬化講伯師,於萬化講伯處,修了一代時敎,做工不閑,不忙,人一己十,人十己百,博涉內外,莫不精通,名振八域,二十三歲時,以衆望,開講於東鶴寺,四方學者,如水就東.
三十一歲時夏,師忽憶桂虛師,前日眷愛之誼,欲往訪之,告衆發程,中路,猝遇暴風急雨,遽入村家,欲避風雨,主人,迫逐不許,
一洞數十戶,家家如之,問其由,則對曰,方今癘疫,大熾,羅病立死,何敢接客.
師聞之,心身,悚動,如臨生死斷崖,頓覺文字之未能生死,直發菩提心,還山後,逐散學人,閑門端坐,專參靈雲禪師之,驢事未去 馬事到來,話,刺股打頭,以制睡魔,一念萬年,銀山鐵壁,如是三月,萬機己熱,一日僧,聞,如何是爲牛,則爲無穿鼻空處,?
師, 言下大地平沈,物我具忘,百千法門,無量妙意,當下氷釋, 時則,己卯凍十一月望間也,
自此超脫形骸,不拘小節,任運騰騰,悠悠自適,三十二歲時,住洪州天藏庵,一日,大衆演法次,特明傳燈淵源,仍自嗣法于龍巖和尙師於淸虛,爲十二世孫,而於喚惺,爲七世孫也, 爾來,二十餘年間,往來于洪州之天藏,西山之開心,浮石等地,有時暝心默想,有時爲人說敎,大振禪風.
五十一歲時,移錫于陜川海印寺,當寺,適有勅旨之印經佛事,及新設修禪社之業,衆,推師,爲法主,
五十四歲時,東萊梵魚寺金剛庵,及摩訶寺,羅漢改粉佛事時,爲證明,
五十六歲時,歷五臺及金剛,到安邊釋王寺,爲五百羅漢改粉佛事之參證,
其後,絶欲避世逃名,潛跡於甲山,江界等地,自號蘭洲,以長髮儒冠,現婆羅門身,萬行頭陀,入泥入水,隨緣行化,
六十四歲時,壬子四月二十五日,無病入寂于甲山,雄二坊道下洞,法臘五十六歲,右略譜,未得詳傳,只資後人所記之散屑,及平日所聞之單片,倘有結漏,故名以 略譜
望讀者, 亮燭焉
韓龍雲 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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