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전42 북파 5조 유해섬(劉海蟾)진인 유해섬(劉海蟾) 재상 벼슬에 오르다 연나라 땅 廣陵광릉 출신인 劉玄英유현영은 처음 이름이 操조였으며, 호를 海蟾子해섬자라고 하였다. 세상 사람들은 흔히 호인 "해섬"을 이름 대신하여 "劉海蟾"유해섬이라 부른다. 그는 당나라가 망한 후인 五代오대 시기에 살았다. 어려서부터 일심으로 功名공명을 구하였는데, 진사시험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나아갔다. 당시 燕나라를 다스리던 劉守光유수광 밑에 들어가 宰相재상이 되었다. 세상이 혼란하였던 오대 시기는 지방의 군벌들이 割據할거하여 스스로 패자임을 자처하며 천하 쟁패를 다투던 시끄러운 때였다. 유수광도 그 당시의 藩鎭軍閥번진군벌이었다. 유수광은 당나라 말기 군벌이었던 劉仁恭유인공의 아들이었는데, 아버지의 妾첩을 취하였다가 축출되었다. 나중에 이 유수광이 자칭 盧龍노룡절도.. 2023. 5. 3. 구장춘 진인 丘長春 眞人, 구처기 구장춘 진인 丘長春 眞人, 구처기 징키스칸을 만나러 서역에 가다 丘處機구처기(1148∼1227)는 금나라와 원나라 초기의 도사이다. 도교의 한 갈래인 全眞道전진도 北七眞북칠진중의 한명이다. 자는 通密통밀이고 호는 長春子이다. 長春眞人장춘진인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다. 산동출신으로 19세 때 출가했다. 출가한 다음해에 왕중양을 찾아뵙고 스승으로 받들었다. 왕중양을 따라다니면서 玄機현기를 체득했다. 스승 왕중양이 우화등선 한 후 구처기는 섬서성 磻溪반계 동굴 속에서 6년을 머물며 고심 수도하였다. 후에 龍門山용문산에서 스스로 분발하여 성심을 다하여 7년을 닦았다. 明昌명창 원년(1190) 금나라 章宗장종이 "중생을 현혹하고 백성을 어지럽힌다(惑世誣民혹세무민)."는 구실로 조서를 내려 도교를 금지했다. 이.. 2023. 5. 3. 종리권(鍾離權)정양(正陽)조사(펌/빛의지구) 종리권(鍾離權) 종리권(鍾離權)의 다른 이름을 한종리(漢鍾離)라고도 한다. 이로 미루어볼 때 그는 한대(漢代 : BC 206~AD 220)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자(字)는 운방(雲房)이다. 경조 함양(지금의 협서) 출신으로 후에 이름을 각(覺)으로 고쳐 종리각(鍾離覺)으로 바꾸었으며 자(字)도 적도(寂道)라 하였고 도호(道號)를 정양자(正陽子)라고 하였다. 원나라 시대에 전진도(全眞道)에서는 정양(正陽)조사로 받들어 모시었다. 종리권의 부친은 한(漢)나라 때 열후의 벼슬에 봉해져 벼슬이 중군태수(中郡太守)까지 올랐다고 한다. 도교는 그가 한대 무장 출신이라고 꾸며내었다. 그러나 여러 연구자들의 고증에 의하면 이 한종리의 원형은 당나라 사람인 듯하며, 중에 종리권의 시가 수록되어 있는데 그 소전에 의.. 2023. 4. 30. 주역 참동계의 저자 위백양(魏伯陽) 선인 신선이 과연 존재하는가? 스승 *갈홍(葛洪)을 따라 "등승"이라는 도가수련자가 나부산(羅浮山)에서 연단(煉丹)을 제조한 지 이미 여러 해가 지났다. 어느 날 등승은 마침내 스승 갈홍에게 마음속의 의문을 토해냈다. "스승님이시여! 도대체 신선(仙人)은 존재하는 것입니까?" 그 말에 갈홍은 가볍게 두 눈을 치켜뜨더니 멀리 끝없이 펼쳐진 산등성이를 휘감아 도는 흰 구름을 바라보면서 얼굴에 엷은 미소를 한번 짓는다. 그리고 제자 등승에게 선인 위백양(魏伯陽)의 고사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위백양의 신단 이야기 위백양은 동한(東漢)시대 "오현"(吳縣)사람이고 명문귀족 출신이다. 위백양은 타고난 성품이 청정을 좋아하고 도가의 연단(煉丹)과 술류(術類)를 좋아했다. 그는 때가 되자 속세를 버리고 제자 3명을 데.. 2023. 4. 23. 이전 1 2 3 4 ··· 1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