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학인물고 (16) - 이제마(李齊馬)
이제마(李齊馬) 연 대 : 1838(헌종4)~1900(고종) 출 생 지 : 함흥(咸興) 본 관 : 전주 자 : 무평(務平) 호 : 동무(東武) 주요저서 :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 格致蒿 이제마는 이조말기의 한의학자로서 사상의학(四象醫學)을 창안하여 많은 중환자를 고쳤으며 그의 학설을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으로 집대성하여 한의학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사람 이다. 사상의학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한방에서 사람의 체질에 따라 약을 쓰는 정도로 알고 있겠지만 한의학사 반만년을 회고해 볼 때 이는 한의학을 과학화의 문전에까지 이끄는 새로운 경지의 개척이요, 앞으로의 새로운 차원의 의학원리와 좌표를 제시하여준 귀중한 학설이다. 이제마는 의학에서뿐만 아니라 도교사상에도 조예가 깊어 풍수, 지리, 둔갑, 축지 등에 대한 많은 일화를 남기고 있다. 이제마가 서울에 삼년 가까이 머물렀을 때의 일이다. 경기 감영에서 나라의 급한 일로 함경도 감영까지 연락을 보내야 했을 때, 경기 감영에서는 이제마를 불러 함경도 감영까지 다녀오도록 하였더니 저녁에 떠났다가 아침에 돌아왔다고 한다. 이 얘기는 당시 장안에 파다하게 알려진 얘기로 이제마는 강홍노(차력, 축지 등으로 이름이 높았다)와 함께 함경도의 거물이라고 한다. 당시만 해도 이런 얘기는 자연스럽게 일상 생활 안에서 존재했던 것 으로 보아 그때까지 이런 분들이 많이 계셨던 것은 의심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이런 능력은 단학수련을 통하여 체득하신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근대의 역사책에 보면 여타의 사실은 기록하였으면서도 축지(縮地), 둔갑(遁甲) 등은 사실 여부를 확인해 볼 생각도 않고 마치 이런 것을 기록하면 자신이 금시 미개인으로 취급받는 듯 기피하고 있다. 이는 모두 우리 것을 믿지 않고 서양의 유물 사상만을 숭배하는 모화사상(慕華思想)아닌 모서사상 (慕西思想)의 망령에 사로잡힌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제마는 함흥 반룡산 밑에 남촌(南村)의 사촌(沙村) 조그마한 주막에서 태어났다. 그가 출생할 즈음에 그의 조부 충원공(忠源公)이 꿈을 꾸었는데 꿈에 어떤 사람이 망아지 한 마리를 끌고와서 “이 말은 제주도에서 난 용마인데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니 공께서 맡아서 잘 길러주시오.” 하고 나무기둥에 망아지를 매어놓고 가버렸다. 꿈에서 깨어난 충원공은 이상히 여기며 일어나 앉앗다. 그때 문밖에서 누가 찾는 소리가 들려 하인을 시켜 나가보게 하였다. 문밖에 웬 여인이 강보에 갓난 아이를 싸서 안고 서 있었다. 그 여인의 말이 “이 아이는 이진사의 아이오니 받아주십시오”하였다. 이진사란 바로 충원공의 아들인지라 여인에게 까닭을 묻자 여인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어느날 이진사가 이웃마을을 다녀오다가 주막에서 친구들을 만나 양에 넘도록 술을 마셨다. 친구들은 몹시 취한 이진사를 주막 주인에게 부탁하고 돌아왔다. 밤이 되어도 이진사는 술에서 깨어나지 못하였다. 주막 주인 내외는 그를 안방 아랫목에 자리를 깔아서 재웠다. 그때 주막 주인에게는 과년한 딸이 하나 있었는데 못생긴데다 총명마저 남만 못하여 처녀로 늙고 있었다. 내외는 딸을 불쌍히 여겨 하룻밤만이라도 처녀를 면하게 해 주려고 이진사 방으로 들여보냈다. 이렇게 되어 이진사는 그 처녀와 인연을 맺어 아이를 낳게 된 것이다. 사연을 들은 충원공은 아들을 불러 물어보니 사실인지라 두 모자를 받아들였다. 이처럼 그의 운명은 기구하여 비록 서자로 태어나기는 하였으나 그를 각별히 아끼고 이해하며 그의 장래에 큰 기대를 가졌던 조부 충원공은 자주 온가족을 모아놓고 비록 서자일지라도 적자(嫡子)와 다름없는 처우를 해야 한다고 훈계함을 잊지 않았으며 임종에 이르러서는 이제마를 잘 돌볼 것을 유언까지 하였다 한다. 이제마는 七세 때에 관북의 학자로 알려진 백부 직장공(直長公)에게서 수학하였다. 이제마는 글을 배우기보다 놀기를 좋아했으며 칼쓰기, 활쏘기 등 무예를 즐기어 자신이 스스로 호를 동무(東武)라 하였다. 하루는 백부 직장공이 친지와 제자들을 모아놓고 가빈호독서(家貧好讀書)라는 시제(詩題)로 시를 짓게 하였는데 이때 밖에서 뛰놀던 이제마가 들어오더니 즉석에서 몇자 적어놓고 나갔다. 당시 그의 나이는 12세였는데 이 자리에서 그가 장원을 하여 좌중의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그 시는 이렇다. “한때 천하를 주름잡던 진시황의 집권도 마침내는 황혼이 찾아들었고 다시 양무제가 득세하여 제왕으로 군림했으나 그의 거소에는 야심한 등불밑에 수심만이 커가더라. 山河日暮始皇局 宇宙燈深武梁盧“ 이것은 당시 이조 말엽의 상황을 진시황의 패망에 비유하여 읊은 것으로 이 한 수의 시만 보아도 그의 조달(早達)한 총명과 재질이 얼마나 비범했던가를 짐작할 수 있겠다. 이제마는 늘 잔병으로 고생하였는데 이는 육체적인 병약 외에도 서자로 태어나 받아야 했던 마음의 고통으로 인한 것이었다. 그는 명의를 찾아 진찰을 받고 그들의 처방대로 성심껏 따랐으나 그의 병은 도무지 낫지를 않았다. 이에 기존의학에 회의를 품고 그 자신이 직접 의학공부를 시작하여 피나는 노력 끝에 사상의학이 탄생되게 되었다. 즉, 이제마는 그때까지 어느 누구에게나 같은 병에는 같은 약을 쓰는데도 때로는 낫지 않은 이유를 사람이 나면서부터 서로 다른 체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밝혀내고 체계화한 것이다. 드디어 이제마는 재래의 본초학(本草學-한방약효학)에서 새로운 방향을 찾아 체질과 질병에 따른 사상약리학(四象藥理學)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 개발하여 인류 문화사상 불멸의 공을 거두었던 것이다. 생전에 이제마를 자주 만나본 적이 있는 사학가 이능화의 기록에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이제마는 여행차 자주 서울에 오면 한결같이 남산에 올라가 늘 솔잎과 여러 가지 약초를 씹어 약성(藥性) 감별연구에 골몰하였으며 그가 건강이 좋지 못할 때는 언제든지 순모밀 국수와 다래 등 으로 회복시킴을 보았다. 일반 환자에게는 절대로 금물인 메밀이 태양인(太陽人)인 자신에게는 인삼, 녹용보다 더 훌륭한 보약이 된다고 기뻐하였는데 그의 주장은 실증과 엄연한 학리에 입각한 것이지 결코 공론과 관념적인 것이 아닌 것이다.“ 이능화도 젊어서부터 안질로 고생하여 백약이 무효하였으나 이제마의 치료법으로 쾌효(快?)를 보았다 한다. 이능화를 치료하고 나서 쓴 이제마의 회상기를 보면 다음과 같다. “군의 안질은 그것이 간경(肝經)에서 온 것이 아니고 소양인이기 때문에 위경(胃經)의 열이 간장으로 파급된 것이니 약성(藥性)이 한냉한 석고(石膏-硫酸石灰)나 활석(滑石) 등의 광물 성약을 자주 먹어서 지금의 굳은 대변이 활하게 풀리기를 한도로 하고 먹어야 하네”하여 일러주었더니 몇해를 두고 괴롭던 것이 불과 10여일만에 씻은 듯이 나은 증험(證驗)을 보였다. 그러면 이제 그가 주장한 사상의학의 개요를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太陽人<龍之性> -장부의 특징 : 폐는 크고 간은 작다. -성격과 그 장단점 : 단기 착상이 기발하고 솔직하며 독존과 비타협적이다. -품성과 체형 : 단아하며 용모와 체구가 단정하고 깔끔하며 하관이 빠르다. -기질 : 자존심이 강하고 감상적이며 번의가 잦은 영웅기질이다. 천재형, 발명가 -행동과 태도 : 의욕 과잉으로 주위와 동화가 잘 안되며 재질이 뛰어나는 수가 많다. -발병율이 잦은 질병 : 土氣, 眼昏, 脚弱, 소화불량(신트림) -적합한 약물 : 五加皮, 木果, 麥, 松花, 蕎 -적합한 음식물 : 다래, 앵두, 조개, 포도 -지방기질 : 만에 하나 정도로 극히 드물다. 太陰人<牛之性> -장부의 특징 : 폐는 작고 간은 크다. -성격과 그 장단점 : <正大> 웅장한 계획과 포용력이 있으며 욕심이 많고 음흉하다. -성품과 체형 : 의젓하다. 피부는 약하나 대체로 筋骨의 발육이 좋으며 顔貌는 원형, 타원형에 가깝다. -기질 : 호걸풍, 낙천가, 겁쟁이, 실업가, 정치가 -행동과 태도 : 언행이 듬직하고 거동이 무거우며 또한 체력이 좋아 활동적일 수도 있다. -발병율이 많은 질병 : 고혈압, 중풍, 대장 및 맹장질환, 천식, 만성기관지염, 심장병, 간경화증, 신경성 심장증 -적합한 약물 : 鹿茸, 麥門冬, 麻黃, 大黃 -지방기질 : 경상도, 함경도, 제주도 小陰人<驪之性> -장부의 특징 : 비장은 작고 위장은 크다. -성격과 그 장단점 : <小巧> 내성적이고 치밀하게 사색하며 양심적이고 비겁하며 무기력하다. -품성과 체형 : 얌전하며 체세(體勢)는 앞으로 굽고 근육이 비교적 적고 뼈는 굵다. 단살(肌肉)이 연하여 여믄 멋이 적다. -기질 : 종교가, 교육가, 지사형, 꽁생원 -행동과 태도 : 게을러서 실내에 들어앉기를 좋아하며 주밀하여 정돈된 환경과 정결을 좋아한다. -발병율이 많은 질병 : 위하수증, 위산과다증, 추위타는 병, 상습복통, 급만성 위염 -적합한 약물 : 人蔘, 附子, 紫蘇, 巴豆 -적합한 음식물 : 狗肉, 鷄肉, 糖根, 캬베크 -지방기질 : 충청도, 강원도(中部地方) 小陽人<馬之性> -장부의 특징 : 비장은 크고 위장은 작다. -성격과 그 장단점 : <銳氣> 외향성으로 사무에 민첩하고 비판적이며 감정을 숨기지 못한다. 사물에 대해 체념이 빠르다. -품성과 체형 : 상체의 발육이 좋으며 머리의 앞뒤가 나오고 하지와 뼈가 가늘다. 보행에 있어 자세가 곧고 바르나 안정감이 없다. -기질 : 사무원, 상업인, 신경질형인 군인 -행동과 태도 : 잠시도 안정된 기동을 갖지 못한다. -발병율이 많은 질병 : 만성신장기능부전, 상습요통, 성기능장해 -적합한 약물 : 熱地黃, 枸杞子, 山藥, 嚮石 -적합한 음식물 : 녹두, 참외, 海蔘, 猪肉 -지방기질 : 경기도, 평안도, 전라도 이제마의 이와 같은 사상의학에 관한 학술적 논지와 그 주장은 1894년에 원전인 <동의수세보원 (東醫壽世保元)>을 저술함으로써 발표되었다. 이제마의 의학의 기본개념 중에 특히 중요한 것은 신심일여사상(身心一如思想)으로 볼 수 있다. 즉, 사람의 건강과 수명은 그 사람의 정신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것이라고 설파하였다. 그리하여 “호현낙선(好賢樂善)이 인간의 가장 좋은 약이요, 투현질능(妬賢嫉能)이 만병의 근원이 된다”고 하고 도심무병(道心無病)이라는 의학 최고의 이상을 구현하려 노력하였다. 일생을 한의학 연구와 후진양성에 힘썼던 이제마는 1900년 8월 21일 임종했다. 임종에 이르렀을 때 사람들에게 “나는 가나 앞으로 백년이면 전세계는 사상의학으로 귀의될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의 제자에는 김영관(金永寬) 한직연(韓稷淵) 등이 있다. 이들 제자들은 스승이 죽은 이듬 해에 스승의 뜻을 받들어 스승의 저서인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을 간행하여 스승의 학설을 널리 보급하게 되었다. 이제 이제마의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은 허준의 동의보감(東醫寶鑑)과 함께 세계에 자랑할만한 의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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