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대백 선생의 36칙 ***
黃先生이, 이미, 이것을, 撰했으나, 처음에는, 비밀로 해서, 전하지 않고,
단지, 가까운 知友에게, 筆寫하기를 허락했다.
이미, 自由出版社 주인, 蕭天石先生이, 그것을 보고, 아끼게 되어서,
이에, 흔연히, 인쇄하여, "황정요도" 라 이름지었다.
이제, 그것을, 간결하게, 다시 요약해서, 36則이 된 것이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정좌(靜坐)를 배우는데는,
먼저, 그 자세(姿勢)를, 바르게 해야 하고,
다음은, 성의(誠意)를, 저 단전(丹田)에, 놓는 것이다.
2. 힘을 다해, 잡념을, 멈추는 것이다.
3. 눈으로, 안을, 응시(凝視)하는 것이니,
이른바, 하단전(下丹田)을, 회광반조(回光反照) 하는 것이다.
4. 다만, 지나치게, 의도(意圖)에 집착하지 말고,(無爲)
단지, 하단전을, 때때로, 지각(知覺)한즉, 옳은 것이다.
5.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지녀서,
견고한 마음으로, 공부를 지어 가되,
효험을 보지 않으면, 멈추지 말아야 한다.
6. 처음, 靜坐를 배우면,
호흡이, 자연히 고르지 않는데,
강제로, 호흡을, 고르려 하지 말아야 한다.
다만, 誠意를, 저 下丹田에 두면,
호흡의 氣가, 자연히, 점점균등(漸漸均等)해 진다.
7. 정좌시(靜坐時), 지나치게, 의도(意圖)에 집착 하지 말고,
또한, 한 때라도, 성의(誠意)가, 없는 것도, 옳지 않다.
8. 만약, 뜻에 집착한즉, 저 유(有)에 떨어지고,
뜻이 없은 즉, 공(空)에 떨어지므로,
둘 다, 도(道)가 아니다.
모름지기, 일체가 없다는 생각을 한즉,
자기신체도, 그 있음을, 자각할 수 없는 것이니,
오로지, 한 점의 지극한 정성으로, 저 하단전(下丹田)을 비추어서,
치우치지도, 기울지도 않게 하여,
"잡념"(雜念)과, "생각"이, 없어져야,
바야흐로, 정좌(靜坐)의 도(道)에, 맞는 것이다.
9. 어떤 때, 잡념이, 홀연히 일어나면,
이것은, 성의(誠意)가, 곧, 이완(弛緩) 된 것이니,
속히, 성의(誠意)를 거두어, 저 하단전(下丹田)에 두면,
잡념은, 스스로, 사라진다.
10. 어떤 때, 홀연히, 사람이나, 물건, 기화요초(琪花瑤草) 등,
여러 환상(幻像)을 보면, 이것은, 이미, 성의(誠意)가, 어두워 진 것이니,
성의(誠意)를 점검한즉, 환상(幻像)은, 스스로, 사라진다.
11. 보신(補身)이, 이미 끝나면,
일단의 양기(陽氣)가, 하단전에, 가득 모여서,
주야(晝夜)로, 온난하기가, 따뜻한 봄 날 같은데,
이러한 상황이 오면, 마땅히, 옛(?)을 의지해, 비추고 비추어서,
양기(陽氣)를, 하단전(下丹田)에서,
용납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하고,(뜨겁게 하고)
그 불구슬의 기(氣)가, 구멍을 찾아, 위로 올라간 즉,
심장(心臟)이 압박을 받고, 신장(伸張 - 나갈 곳)을 얻지 못하면,
이에, 아래로, 양관(陽關)으로 달려가서,
외신(外腎 - 신장, 낭심)이, 바로 충격을 받으면,
외신(外腎)은, 곧, 묘한 감촉에 시달린다.
이때에, 마땅히, 긴급히, 양관(陽關)을, 폐쇄해야 한다.
그리해서,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12. 陽關이, 이미 막히면,
陽氣는, 아래의 작교(鵲橋)를 지나, 곡도(穀道)로 나가려 하는데,
이때에, 마땅히, 곡도(穀道)를 막아서,
그 氣가, 새어나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
13. 穀道를, 이미 막으므로 해서,
陽氣는, 미려혈(尾閭穴)에, 충격을 주는 데,
이때에, 뜻으로, 마땅히, 그것을 인도하여,
미려관(尾閭關)을, 통과하게 해야 한다.
14. 그러나, 화후(火候)의 功이 부족하면,
(誠意는, 火와같고, 心意가 이르는 곳이, 이 火다.
丹經의 火는, 誠意의 작용일 뿐이다.)
陽氣가 부족해서, 尾閭를, 능히, 통과하지 못하는데,
이때, 강제로, 통과 하려 말고,
다시, 誠意를, 下丹田에 모아,
다시, 靜坐하여, 그 氣가, 생기도록 한다.
15. 氣機가, 다시 움직임을 기다려서,
火珠의 세력이, 尾閭關에 도달하면,
뜻으로, 그것을 인도하여, 그것을, 통과시킨다.
16. 한차례, 혹은, 여러 차례, 반드시, 통과할 시기를 기다려서,
드디어, 尾閭를 통과하면, 이 불덩어리는, 협척(夾脊)에 이르는데,
이때도, 역시, 통과함을 구한다.
이것이, 제2關門이 된다.
17. 능히 통과하면 말거니와, 그렇치 않으면,
이에 다시, 誠意를, 저 下田에 두어서,
옛을 의지해 비추면서, 氣가, 충만하기를 기다린다.
18. 다시, 충만해진 氣를,
뜻으로, 인도하여, 통과시킨다.
19. 이미, 夾脊을 지났으면,
이 한 덩어리 熱氣는, 곧, 위로, 옥침관(玉枕關)에 도달 한다.
이것이, 이른바, 세 번째 關門 이다.
이때에도, 역시, 뜻으로, 그것을 인도하여,
玉枕을 통과하여, 上田에, 들어가게 한다.
20. 능히 통한즉, 그것을 통하게 하고,
그렇치 못하면, 이에 다시, 誠意를, 저 下田에 두고,
그 氣機가, 왕성하기를, 기다린다.
21. 關門을, 이미 통과했으면,
다시, 이 불덩어리를 이끌어,
명당(明堂)을 지나, 상작교(上鵲橋)를 경유해서,
입의 左右을 통해서, 중루(重樓)로, 바로 내려가,
저 황정(黃庭)에 떨어뜨린다.
22. 下丹田으로 부터 ,
陽關, 下鵲橋, 穀道, 尾閭, 夾脊, 玉枕, 上丹田, 明堂, 黃庭에 이르면,
임독양맥(任督陽脈)이, 전부 통하여,
과관복식(過關服食)을, 이미, 마친 것이다.
이때에는, 단지, 한가지 뜻을, 면면(綿綿)히 하여,
영원히, 흩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
23. 특별히, 靜坐때만, 이런 것이 아니라,
行住坐臥, 飮食, 睡眠시 등,
片刻을, 가히, 誠意를, 이완시켜서는 안된다.
誠意가, 한번, 弛緩되면, 陽氣가, 곧, 발달치 못한다.
마치, 솥안에, 끓는 물과 같아서,
火가 밝은즉, 氣가 왕성하고,
火가 멸한즉, 氣도 없어진다.
이것은, 誠意을, 火에 비유하는 것은,
망령되이, 지어낸 말이 아니다.
丹經에, 왈,
水마르는 것을 두려워 하고,(水는 精氣를 비유하고)
火는, 차가워 지는 것을 두려워 한다.(火는 誠意를 가르킨다)
24. 이로부터, 음식이 끊어지고,
대정(大定)에 들며, 나아가서, 출신(出神)을 하게 된다.
출신(出神)은, 시기가 있는데,
성의(誠意)를, 중하이전(中下二田)에, 돌이켜 비추어서,
양기(陽氣)가, 발생하도록 해서,
태신(胎神)의 부족을 돕는다.
25. 태신(胎神)의 기(氣)가, 족(足)하면,
명명랑랑(明明朗朗) 해서, 하늘 가운데 있는, 달(月) 같이 되는데,
홀연히, 좌중에, 눈꽃 형상이, 목전에서, 춤추며 날리는데,
이것이, 출신(出神)때의 시기가, 도달한 것이다.
26. 이때, 곧, 신(神)을, 상단전(上丹田)으로 옮겨서,
니환궁(泥丸宮)에서, 공중(空中)으로,
올라가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27. 여러 번, 반복해서 생각하고,
誠意로, 그것을 인도하면, 능히, 나갈 수 있는데,
만약, 능히 나가지 못하면, 中下二田을, 다시 비추어서,
그 기틀이, 생기기를, 기다려야 한다.
28. 기틀이 생기면, 이에, 法에 의지하여,
뜻으로, 이끌어서, 그것을, 오래하면,
出神할 수가 있다.
양신(陽神)이, 이미 나가면, 곧, 몸밖에 몸이라,
그것을, 이름하여, 법신(法身)이라 한다.
이것은, 만겁(萬劫)이 지나도, 무너지지 않는 몸이다.
이곳에 이르러야,
바야흐로, 功을, 성취했다 할 수 있고,
영원히, 윤회(輪廻)의 흐름에서 벗어나고,
무상진인(無上眞人)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마땅히,
양육(養育)의 功을, 베풀어야 한다.
고로, 陽神이, 한번 나오면, 마땅히, 곧, 거두어 들인다.
29. 거두어 들인 후에는,
다시, 神을, 조절해서, 밖으로, 내 보낸다.
30. 매일 매일, 이와 같이 훈련시키는,
정좌(靜坐)의 공(功)이,
오직, 상단전(上丹田)에, 있을 뿐이다.
31. 양신이, 몸 밖을, 나온 후에는, 허다한 신통이 생기는데,
만에 한가지라도, 이것에, 현혹되거나, 기뻐해서,
밖으로, 光芒을, 들어내서는 안 된다.
마땅히, 묵묵히, 안으로, 本源眞性을, 涵養 해야 한다.
32. 양신이, 몸을 나온 후, 처음에는, 멀리 가서는 안 된다.
먼저, 한 두 걸음을 가고, 바로, 回收하여 들이고,
다시, 一二十步를 걸은 후, 곧, 거두어 들인다.
그리해서, 가까운 곳에서 멀리로,
차츰 차츰 행해서, 잃어 버리지 않게 한다.
33. 陽神이, 이미 나오면,
수련이, 이미 끝났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대개, 靜坐로 부터, 陽神이 나온 것은,
법으로써, 조성 한 것이고, 극히, 빠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옛날의 습성(習性)은,
절멸(絶滅)하기 어려운 걱정이 있으니,
불괴(不壞)의 몸은 있으나,
불천(不遷)의 성(性)은, 없는 것이다.
명(命)은, 요달했으나,
성(性)은, 다하지 않은 것이다.
고로, 出神후에, 다시, 靜坐를 하는데,
坐法은, 옛과 같은데,
오직, 陽神 하나를, 저 上田에 두고,
치우치지도, 의지하지도 않으면서,
윤집궐중(允執厥中) 한다.
34. 점차로, 저 中도 집착하지 않고,
또한, 법에, 얽매이지 않게 해서,
오로지, 한조각 청허(淸虛)를 지니고,
허공(虛空)과 암암리에 합한다.
35. 점차, 허공(虛空) 또한, 없어지고,
진(眞)과 더불어, 虛空이, 암암리에 합한다.
36. 虛하고, 虛하며,
그것을, 없게 하고, 없게 해서,
가히, 허무도 아닌 곳에, 이르게 해야,
바야흐로, 그 마지막 단계에, 이르게 된다.
이때의 허무(虛無)는, 곧, 본성(本性) 인데,
본성(本性)이, 더욱, 허무(虛無)에 합하면,
신령스런 본체가, 정순해져서,
곧, 祖她 위에, 있게 된다.
그것을 일러, "위 없는 위" 라 한다.
몸이, 이곳에 이르면,
그것을 일러, "앞이 없는 앞" 이라 하는데,
참으로, 功이, 원융하게 바르며,
果가, 원만하게, 가득한 것이다.
ace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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