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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전

진시황의 불노초를 찾아서, 서복 (徐福)

by 성천하지미미자 2023. 3. 9.

죽은 사람을 살리는 불사초

서복(徐福)은 일명 서불(徐市)이라고도 하며 전국시대 제나라 출신의 술사(術士)였다. 최근 학자들의 고증에 따르면 강소성 연운항시(連雲港市) 감유현이 바로 서복의 고향이라고 한다. 그곳에는 지금도 서복의 유적지와 서씨 가족의 족보가 있다.

진시황이 천하를 통치하고 있을 때 서역지역 대완국(大宛國)에 억울한 죄로 죽은 많은 시체가 도로가에 즐비하였다. 그때 까마귀가 이름모를 풀을 물고 와서 죽은 사람의 얼굴에 덮어주자 곧 살아나는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이 신기한 일이 다양한 경로를 통해 진나라에까지 전해져 진시황도 보고를 받았다. 진시황은 이 일에 깊은 관심을 가지며 사람을 파견해서 이 풀을 가져오게 하였다.

그러나 진나라 조정에서는 이 풀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진시황은 당시 도술이 고명한 것으로 천하에 이름을 날리던 귀곡선생(鬼谷先生)에게 부하를 보내어 이 풀에 대해 물어보았다. 귀곡선생은 "동해상에는 10주(十洲)가 있는데 그 중에 조주(祖洲)위에는 사람을 죽지 않게 하는 풀(不死草)이 자란다. 그 풀은 경전(璟田)이라는 밭에 자라는데 그 이름을 "양신지"(養神芝)라고 부른다. "양신지"의 잎은 줄 풀과 닮았는데 다른 풀들과 무리지어 자라지 않고 단독으로 자라며 한 그루 풀이 가히 천명을 살릴 수 있다"고 한다.

서복, 동남동녀 삼천 명을 거느리고 불로초를 구하러 가다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은 이때 자신이 이룩한 제국이 영원하고 자기수명 또한 영원하기를 바라며 불로초(不老草)를 구하려고 했다. 이러한 귀곡자의 말에 귀가 번쩍 뜨인 진시황은 사람을 보내서 이 풀을 대량으로 채집해 오고 싶어 했다.

이와 때를 맞춰 서복이 진시황에게 상소를 올렸다. "동해상에는 봉래(蓬萊), 방장(方丈), 영주(瀛洲)산 등 3개의 신산(神山)이 있습니다. 세 개의 신산 위에는 수많은 선인들이 살고 있사온데 선인들을 찾아가 장생불로(長生不老)의 도를 구하여 오겠습니다."하였다.

이 상소는 바로 진시황의 속마음과 딱 부합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서복을 책임자로 임명했다. 이때 서복은 동남동녀(童男童女) 각 삼천 명과 수만금의 재물을 여러 척의 큰 배에 나누어 싣고 동해 삼신산을 찾아 출발했다.

서복이 동해 삼신산을 찾아 한번 떠나고 난 후 종래 돌아오지 않았으며 어디로 갔는지 행방이 묘연하였다.

서복, 백호(白虎)가 끄는 수레를 타고 신선으로 출현

서복과 동남동녀가 조주(祖洲)라는 섬에 터전을 잡고 세월이 지남에 따라 수만호가 사는 섬이 되었다고 하는 풍문이 돌았다. 그들 중에서 몇몇은 자주 회계(會稽)지역으로 와서 약을 사가지고 갔다고 한다. 한편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일본의 개국왕인 "신무천황"(神武天皇)이 곧 서복이라고 믿고 있다.

세월이 천여 년 흐르고 난 뒤, 남제(南齊)시기의 선인인 심희(沈羲)가 득도했을 때, 황제(黃帝)와 노자(老子)가 세 명의 사자를 파견하여 승천하는 그를 영접했다. 세 명의 사자 중, 백호가 끄는 수레를 탄 신선이 서복이었으며, 청룡이 끄는 수레를 탄 사람이 도세군(度世君) 사마생(司馬生)이었고, 흰 사슴이 끄는 수레를 탄 사람이 시랑 박연지(薄延之)였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때서야 비로소 서복이 득도해서 신선이 된 것(得道成仙)을 알았다

 

반신불수 환자, 신선을 찾아서

진시황으로부터 약 천 년이 지난 후, 당(唐)나라 현종(玄宗) 개원(開元)때였다. 선비 한 명이 중풍으로 반신불수가 되어 누어 있었다. 그 당시 어의로 이름을 날리던 장상용(張尙容)도 그 선비의 병을 고칠 수 없었다. 반신불수가 된 선비는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나의 신체는 이미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져 견디기가 어렵고, 수명을 얼마나 연장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듣기로는 동해바다 한가운데 신선이 있다고 한다. 신선을 찾아가서 신선에게 병을 보이면 이 병을 치료할 수 있다. 지금은 이 방법밖에 없다." 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가족과 친구들이 모두 만류하였으나 병자는 결심을 굳힌 듯 듣지 않는다. 반신불수인 선비는 자기를 돌보아줄 하인 한 사람과 함께 먹을 양식 등 생활필수품을 챙겨서 등주(登州)해변가로 갔다. 속도가 제법 빠른 배 한 척을 구해서 짐을 싣고 돛을 펴서 바람을 따라 배를 저어 나갔다. 이렇게 항해한 지 십여 일 만에 망망대해 가운데에서 섬 하나를 발견했다.

백발의 노인이 바로 신선 서복

멀리서 관찰해 보니 점점이 새까맣게 보이는 수 백 명의 사람들이, 아침에 조정에서 조회를 하듯이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잠시 후, 배가 해안에 닿았다. 해안가에서는 여인네들이 바닷물에 약물을 씻고 있었다. 그 선비는 여인들에게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섬 위에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하고 물었다. 그중 여인하나가 손가락으로 그곳을 가리키면서 "저 사람들 중, 가운데 침상 위에서 가부좌하고 앉아있는 수염이 하얀 노인을 보시오, 저분이 바로 서군(徐君)입니다." 하였다.

선비는 서둘러서 "서군(徐君)이라면 누구를 말합니까?"라고 다시 물었다. 그 여인이 "당신도 알겠지만 진시황 때의 서복(徐福)입니다."하였다. 선비는 깜짝 놀라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사람들이 모여 있던 곳을 보니 수 백 명의 사람들이 막 자리를 떠나려 하였다.

그 선비가 하인의 부축을 받아 해안으로 올라가 서복에게 인사를 올리고 자기의 병세와 이곳에 오게 된 경위를 상세히 보고했다. 서복은 "너의 병은 나를 만나 고칠 수 있다."고 하였다. 서복은 먼저 선비에게 맛이 향기롭고 먹기 좋은 밥과 찬을 먹도록 하였는데 밥과 찬을 담은 그릇이 작아 그 양이 아주 적었다. 선비가 양이 너무 적다고 투덜대자 서복은 "이것을 다 먹고 나면 다시 찬을 더 주겠다. 다만 이것조차 너는 다 먹지 못할까 염려스럽다."하였다.

반신불수를 고치고, 동풍을 빌려 되돌아오다

선비는 그 말을 믿지 못하면서도 한 입, 한 입 먹기 시작하였는데 큰 밥그릇으로 몇 개를 먹은 것처럼 배가 불렀다. 그러나 그릇 안에는 하나도 먹지 않은 것처럼 여전히 음식이 줄어들지 않고 남아있었다. 서복은 또 작은 술잔에 술을 따라 선비에게 한 잔 건넸다.

그날 저녁은 잘 자고 다음 날이 되었다. 서복이 약주머니에서 새까만 환약 몇 알을 꺼내어 선비에게 먹도록 하였다. 그 약을 먹은 선비는, 뱃속에서 전쟁을 치르는 듯 요동이 심하여 서둘러 화장실로 갔는데 시커먼 똥이 설사처럼 쏟아졌다. 그러자 선비의 병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못쓰던 수족이 다시 원활하게 움직였다.

선비는 땅바닥에 엎드려 절을 하고 서복에게 이곳에 머물러 스승으로 평생 모시기를 간청했다. 이에 서복은 "너의 운명 중에는 아직 세속에서 누려야 할 복록이 남아 있다. 따라서 아직 여기에 머물 때가 아니다. 네가 돌아가는 길은 걱정마라. 내가 한바탕 동풍을 불게 해서 너를 돕겠다."하였다.

서복은 돌아가는 선비에게 약 한 포대를 주면서 "이 약은 진단이 어렵고 치료하기 힘든 난치병을 고칠 수 있으니 돌아가서 잘 사용하라."고 하였다.

선비는 머리 숙여 감사하고 서복의 명을 좇아 배에 올랐다. 갑자기 바람이 불어 수일 만에 처음 출발했던 등주로 돌아왔다. 장안으로 돌아온 선비가 그간의 일을 당 현종에게 보고하자, 선술(仙術)을 사모하던 당 현종은 오직 부러워 할 뿐이었다. 그리고 서복이 준 약으로 선비가 수많은 난치병 환자를 고쳤음은 말할 것도 없다.

 

출처 : 기공과 기치유

글쓴이 : 조화도술 원글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