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제례祭禮 호칭呼稱

제례 (祭 禮)

by 성천하지미미자 2023. 2. 17.

제례 (祭 禮)

 

                                                                            

                                                   보성향교 유도대학 전교 최상전    (寶城鄕校 儒道大學  典敎 崔相典 )

 

 

제례 (祭 禮)

 

 

1,  제례의 기원 (祭禮의 起源)

 

시초(始初)에 제사(祭祀)를 지내게 된 동기(動機)를 살펴보면 옛날 사람들이 원시적인 생활(原始的인 生活)을 하면서

천재지변(天災地變)과 맹수공격(猛獸攻擊) 질병(疾病)등으로부터 보호(保護)를 받기 위해 하늘과 땅 깊은 물 심수(深水) 거목(巨木) 거암(巨岩) 바다 조상(祖上)등에게 재앙(災殃)을 막아 달라는 소원(所願)을 빌게 된 것이

제사(祭祀)로 발달된 근원(根源)이 된 것이다.

그 후 중세(中世)와 근세(近世)에 이르러유교적(儒敎的)인 조상숭배(祖上崇拜)의

제도(制度)로 바뀌어 내려 오면서 의식절차(儀式節次)에 대(對)한 유학자(儒學者)와

예문가(禮文家)사이에 갑논을박(甲論乙駁)하는 논쟁(論爭)의 대상(對象)이 되기도 하였던 것이다.

 

2, 제례의 의의(祭禮의 意義)

제례(祭禮)란 제사(祭祀)를 모시는 례(禮)로서 조상(祖上)의 기일(忌日)을 맞아

추모(追慕)하는 행사(行事)이며 지난날 미진(未盡)했던 불효(不孝)를 사죄(謝罪)하는 추도(追悼)의 의식(義式)이기도 한 것이다.

옛 어른 말씀에 뿌리없는 나무는 없고 조상(祖上)없는 자손(子孫)은 없다고 하셨듯이

나를 낳아 길러주신 부모(父母)에 대(對)한 정성(精誠)어린 (禮)는 자손(子孫)된 당연(當然)한 도리(道理)인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생활이 바쁘고 생업(生業)에 쫓기는 사회(社會)라 할지라도

일년(一年)에 한 번 오는 부모(父母)의 제사(祭祀)에는 특이(特異)한 사정(事情)이 없는 한 참여(參與)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성현(聖賢)의 말씀에 진기심자(盡其心者)는 제지본(祭之本)이요

진기물자(盡其物者)는 제지말(祭之末)이라 하셨으니 제수(祭需)는 많은 돈을 들여

많이 차리는 것 보다는 형편(形便)에 따라 하되 정결(淨潔)하고 정성(精誠)어린 제수(祭需)라야 할 것이다.

 

3, 제례의 변천과정(祭禮의 變遷過程)

고려 공양왕 이년(高麗 恭讓王 二年)에 포은 정몽주선생(圃隱 鄭夢周先生)이

발의(發議)한 제럐규정(祭禮規定)에 의(依)하면 사품이상(四品以上)의 사대부(士大夫)

가문(家門)에서는 삼대봉사(三代奉祀) 육품 오품은 이대봉사(六品 五品은 二代奉祀)

칠품이하(七品以下)와 일반서민(一般庶民)은 부모제사(父母祭祀)만을 지내도록

하였던 것이며   그 후(後) 조선 성종(朝鮮 成宗)때에 경국대전 예절편(經國大典 禮節編)의

규정(規定)에 의(依)하면 사품이상(四品以上)의 사대부 가문(士大夫 家門)에서는

사대봉사(四代奉祀) 육품 오품(六品 五品)은 삼대봉사(三代奉祀)

칠품이하(七品以下)는 이대봉사(二代奉祀)

일반서민(一般庶民)은 부모제사(父母祭祀)만을 지내도록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고종삼십이년(高宗三十二年) 갑오경장(甲午更張)의 여파(餘波)로

봉건사회(封建社會)의 계급(階級) 반상(班常) 노예(奴隸)등의 구별(區別)이

없어지고 평등사회(平等社會)가 되면서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사대봉사(四代奉祀)를 하게 된 것이다.

 

4, 제례의 종류(祭禮의 種類)

제례(祭禮)가 복잡(複雜)한 만큼 종류(種類)도 다양(多樣)하다.

(1) 장례후(葬禮後) 우제(虞祭)로 초우제(初虞祭)재우제(再虞祭)삼우제(三虞祭)가 있는데

초우제(初虞祭)는 상사(喪事)를 필(畢)하고 반혼(返魂)하여 집에서 지내는 첫 제사(祭祀)이며

재우제(再虞祭)는 초우(初虞)다음에 찾아오는 유일(柔日)인 음일(陰日)

곧 을정기신계일(乙丁己辛癸日)에 지내는 제사(祭祀)인데

만약 그 날 일진이 강일(剛日)인 양일(陽日) 갑병무경임일(甲丙戊庚壬日)인

경우에는 유일(柔日)인 그 다음날 제사 지내야 하며

삼우제(三虞祭)는 재우(再虞) 다음날인 강일(剛日)에 지내는 제사이다.

(2) 졸곡제(卒哭祭)는 삼우(三虞)로부터 삼개월후(三個月後) 강일(剛日)에 지내는 제사(祭祀)이며

(3) 소상제(小祥祭)는 사후일년(死後一年)만에 지내는 제사(祭祀)이며

(4) 대상제(大祥祭)는 사후이년(死後二年)만에 지내는 제사(祭祀)이며

(5)담제(示覃祭)는 대상삼개월후(大祥三個月後)에 정일(丁日)이나 해일(亥日)을 택(擇)하여 지내는 제사(祭祀)이며

(6) 길제(吉祭)는 담제(示覃祭)다음달에정일(丁日)이나 해일(亥日)을 택(擇)하여 지내는 제사(祭祀)이며

(7) 시제(時祭)는 계절에 다라 지내는 제사이며

(8)  기제(忌祭)는 별세(別世)한 날에 지내는 제사이며

(9) 묘제(墓祭)는 후손들이 묘애서 지내는 제사이며

(10) 사우제(祠宇祭)는 불천지위(不遷之位)로서 국가에 큰 공훈(功勳)이 있어

국명(國命)에 따라 사당(祠堂)에 위패(位牌)를 모시고 지내는 제사이며

(11) 다례(茶禮)는 음력 정월원단(正月元旦)과 팔월 십오일 추석(秋夕)에 무축단헌(無祝單獻)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5, 기제일과 재계 (忌祭日과 齋戒)

별세(別世)한 전일(前日)이 입재일(入齋日)이요

별세(別世)한 날이 정재일(正齋日)이요 다음날이 파재일(罷齋日)이다

이 삼일간은 집안을 깨끗이 하고 목욕재개(沐浴齋戒)하며

음주(飮酒)를 삼가하고 가무(歌舞)하지 않으며

상가(喪家)의 조문(弔問)과 흉사(凶事)에 참여(參與)하지 않고

경건(敬虔)함 마음을 가져야 한다

 

6, 기제의 시간(忌祭의 時間)

례문(禮文)에는 별세(別世)한 날 자시행사(子時行祀)라고 했는데

세간(世間)에는 궐명제(厥明祭)니 질명제(質明祭)니 하는 말도 있다

그러나 궐명(厥明)은 미명(未明)이요 질명(質明)은 먼동이 틀 무렵이다

그러니 궐명(厥明)은 12시부터 4시 사이에 지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정상 초저녁에 지내야 할 형편이라면 차라리 다음 날 초저녁에 지내는 것이 옳을 것이다.

 

7, 지방과 축문 (紙榜과 祝文)

지방(紙榜)은 고인(故人)의 신위(神位)를 표시(表示)하는 것이니

경건(敬虔)한 마음으로 깨긋한 한지(韓紙)에 정성껏 붓으로 서야하며

 지방(紙榜)을 쓸 때에는 의관(衣冠)을 정제(整齊)하고 궤좌(궤坐)한 자세에서 쓴다

축문(祝文)은 신위(神位)에게 고(告)하는 글이니 그 내용(內容)은 세월(歲月)이

흘러 휘일(諱日:돌아 가신 날)을 맞아 추모(追慕)의 정(情)이 간절(懇切)하여

간소(簡素)한 제수(祭需)를 올리오니 흠향(歆饗)하십시요 하는 글인 것이다.

만약 축문이 없을 때는 말로 고유하여 알려드리는 것이다.

 

8, 기제사의 순서(忌祭祀)의 順序)

(1) 강신(降神)은 신위(神位)께서 강림(降臨)하기를 청(請)하는 절차(節次)이다.

제주(祭主)가 신위(神位) 앞에 꿇어 앉아 삼상향(三上香)하고 술 잔에 술을 받아

흔작(火欣爵;左로 세번 돌리는 것)하여 모사(茅沙)에 삼제주(三祭主)하고

문하(門下)로 가서 재배(再拜)하고 복위(復位)한다.

(2), 참신(參神)은 신위(神位)를 배알(拜謁)하는 절차(節次)이다 참사자(參祀者) 모두가

문하(門下)에서 남자는 재배(再拜)하고 여자는 사배(四拜)한다.

(3), 초헌(初獻)은 첫 술잔을 드리는 절차(節次)이다 제주(祭主:초헌자)가 신위(神位) 앞에

궤좌(足危坐)하여 사준(司尊)으로부터 고비위(考女比位)의 술잔을 받아

양집사(兩執事)에게 주면 양집사(兩執事)는 함께 두 신위(神位) 앞에 술잔을 올린다

이때 제주(祭主)는 고개를 숙이고 양집사(兩執事)는 계반개(啓飯蓋)하며

우집사가 우적(羽炙:닭이나 꿩) 일점(一点)을 올리고 정저(正箸)를 하면

축관(祝官)이 제주(祭主)의 좌측(左側)에 꿇어 앉아 독축(讀祝)을 하고

독흘(讀訖)하면 제주(祭主)는 문하(門下)로 가서 재배(再拜)하고 복위(復位)한다

고례(古禮)에는 부모(父母)의 기제(忌祭)에는 곡제(哭祭)라 하여 초헌(初獻)이 끝난

동시(同時)에 제원(祭員)모두가 곡(哭)을 하라고 하였다.

(4) 아헌(亞獻)은 두번째 술잔을 올리는 절차(節次)이다

아헌(亞獻)은 주로 주부(主婦)로 하여 아헌자(亞獻者)가 신위 (神位) 앞에 궤좌하고

양집사(兩執事)가 퇴작퇴주(退爵退酒)하면 아헌자(亞獻者)가 사준(司尊)으로부터

 고비위(考女比位)의 술잔을 받아

양집사(兩執事)에게 주면 양집사(兩執事)는 함께 두 신위(神位)  앞에 술잔을 올린다

이때 아헌자(亞獻者)는 고개를 숙이며 우집사(右執事)는 모적(毛炙 소 돼지)일점(一点)을 올리고

정저(正箸)를 하면 아헌자(亞獻者)는 물러 서서 사배(四拜)하고 복위(復位)한다.

(5) 종헌(終獻)은 세번째 술을 올리는 절차(節次)이다

제원(祭員)중에서 종헌자(終獻者)를 정(定)하여 종헌자(終獻者)가

신위(神位)  앞에 궤좌(足危坐)하면 양집사(兩執事)가 퇴작퇴주(退爵退酒)하고

종헌자(終獻者)가 사준(司尊)으로부터 고비위(考女比位)의 술잔을 받아

이때(사준(司尊)은 술잔에 술을 삼분(三分)의 이(二)만 채울것 )

양집사(兩執事)에게 주면 양집사(兩執事)는 함께 두 신위(神位)  앞에 술잔을 올린다

이때 종헌자(終獻者)는 고개를 숙이며 우집사(右執事)는 인적(鱗炙:생선)

일점(一点)을 올리고 정저(正箸)를 하면 종헌자(終獻者)는

문하(門下)로 가서 재배(再拜)하고 복위(復位)한다.

(9) 첨작(添酌)

술잔에 술을 가득 채우는 절차(節次)이다.

제주(祭主)가 신위(神位) 앞에 궤좌(足危坐)하여 사준(司尊)으로 부터

다른 술잔을 받아 좌집사(左執事)에게 주면 좌집사(左執事)는 이 술을 고위작(考位爵)에

세번 나누어 가득 채우고 남은 술을 우집사(右執事)에게 주면

우집사(右執事)는 이를 받아 비위작(女比位爵)에 세번 나누어 가득 채운다

그리고 양집사(兩執事)는 반상(飯上)에 상시(上匙)를 하고

정저(正箸)를 하면 제주(祭主)는 문하(門下)로 가서 재배(再拜)하고 복위(復位)한다

 

(10) 유식(侑食)

식사(食食)를 하시라는 절차(節次)이다

제주(祭主)의 첨작재배(添酌再拜가 끝나면 집사(執事)와 모두가 방(房)에서 나와

합문(闔門)을 하고 대청(大廳)이나 바깥에 꿇어 앉아

흠향(歆饗)하시기를 기다리고 구반경(九飯頃 약 아훕숟가락 자시는 시간) 후(後)에

축(祝)이 삼희음(三噫歆 :기침을 세번 하면)

계문(啓門: 문을 여는 것)하고 들어 간다.

 

(11) 점다(點茶)

숙냉을 드리는 절차이다

장찬자(掌饌者)가 숙냉 두 그릇을 가지고 오면 양집사(兩執事)는 갱(羹:국)그릇을 내리고

숙냉을 신위(神位) 전9前)에 올려 밥을 각각 세번식 떠서 숙냉에 말고

숟가락의 손잡이가 서(西)로 가게 걸쳐 놓는다

 

(12) 고이성(告利成)

축(祝)은 서(西)에 서고 제주(祭主)는 동(東)에 서서 마주보고

축(祝)이 제주(祭主)를 향해 읍(揖)을 하고(제주는 읍을 하지 않음)

소리를 내어 이성( 利成:제사를 다 마쳤다는 것)이라고 고(告)하며

양집사(兩執事)는 시(匙)와 저(箸)를 거두어 얹고

합반개(闔飯蓋)를 하고 물러 나온다.

 

(13) 사신(辭神)

신위(神位)에게 물러난다고 고(告)하는 절차(節次)이다

문하(門下)에서 참사자(參祀者) 남자는 재배(再拜)하고 여자는 사배(四拜)하고

대문(大門) 밖까지 나온다

 

(14) 분지위와 축문(焚紙位와 祝文)

제주(祭主)와 축관(祝官) 집사(執事)가 방(房)에 들어 와서 제상(祭床) 앞에서

지위(紙位)를 떼어 축(祝)과 함께 싸서

제주(祭主) 좌측(左側)에서 지위축문(紙位祝文)을 불사르고

철상음복(撤床飮福)한다.

 

&& 參考事項&&

李栗谷先生께서 焚香과 降神은 倂行再拜라 하였으니

獻爵焚香은 不可인 것이다

墓祀에는 先參神 後降神이며 添酌과 侑食은 없는 것이다.

 

四果 ;  대추(棗) 밤(栗) 배(梨) 감(枾).

魚東肉西 : 魚는 東이요 肉은 西이다.

生東熟西 : 생것은 東이요 익힌것은 西이다.

左飯右羹 : 밥은 좌요 국은 右이다.

左脯右醯 ; 포는 左요 식혜는 右이다.

頭東尾西 ; 魚의 머리는 東이요 꼬리의 尾는 서쪽이다.

尾東頭西 : 肉의 머리는 西요 꼬리는 東이다.

 

진설순(進設順)

과실은 목과(木果) 만과(蔓果) 초과(草果)順으로 하고

채소(菜蔬)는 산채(山菜) 해채(海菜) 가채(家菜)順으로 한다

 

 

 

******이번에 보성 겸백 석호리에 가서 우연히 최상전 선생님을 뵈오니

동안학발(童顔鶴髮)로 천진하게 웃으시며 이 글을 주시면서 당부를 하시는 것 같았다.

다 사라져 버린 유학의 명맥을 아직 잇고 계시다는 것에 대해 한 없는 존경심을 표하고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몸 평생 바닥생활에 자랑할 것 하나 없는 몸이 부끄럽기까지 하여

송구스러울 뿐이나 블로그에 올려 널리 알리고 싶고

 나누고 싶어 이 글을 올립니다.  

後輩   鄭如山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