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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허법어 경허선사

한 번 앉아서 일을 마치다. 경허선사 鏡虛禪師

by 성천하지미미자 2023. 5. 20.

본래부터 일 없거늘 무슨 일 있어 마친다 하는고.

 

홀문인어무비공 忽聞人語無鼻空  홀연히 콧구멍 없는 소로 태어난다는 소리를 듣고

돈각삼천시아가 頓覺三千是我家  확실하게 깨닫고 보니 삼천대천 三千大千세계가 내 집일세.

유월연암산하로 六月燕巖山下路  유월 연암산 밑에서 

야인무사태평가 野人無事太平歌  농부들 일 없이 태평가를 부르네.

 

한 번 앉아서 일을 마치다.

 

계룡산 동학사에서 한 때는 유능하고 젊은 강사 講師 스님으로 제방 諸方에 널리 이름을 떨쳐

경허 스님에게 공부하려고 몰려드는 학인 學人들의 숫자는 나날이 늘어 가고 있었다.

강사로서의 명쾌한 실력과 덕망이 날로 찬란하던 강사 전성기에 죽음의 거리를 지나면서

죽음의 공포를 몸소 느껴 하루 아침에 강사의 소임을 내려 놓고 발심 조용히 참선할 수도처를 찾게 되었다.

이는 삶과 죽음 生死가 무상 無常한 것을 깊이 느낀 바 있어

대장부 大丈夫의 일대사 一大事의 큰 일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동학사에서 주장자와 발우를 걷어 가지고 스님이 찾은 곳은 홍주 洪州의 내포 內浦라고 하는

오늘날 서산군 瑞山郡 고북면 高北面 장요리 長要里 1번지 燕巖山 기슭의 천장암 天藏菴이었다

바랑을 풀어 놓고 스님은 마음껏 용맹정진 하였다.

이 곳은 학인도 신도도 찾지 않는 조용한 비산비야 非山非野의 암자로

수행정진 하기에 다시 없는 보림처 保任處이다.

경허 스님이 보림을 철저하게 하여 극치에 이르자

그것은 보통의 수행자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지고 온 바랑에서 옷 한 벌을 꺼내어 솜을 넣어 두툼한 누더기 한 벌을 손수 지어 입고

한 번 앉아 꼬박 일년을 지냈으니

공양이나 받아 들고 대소변을 보는 일 외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자세를 움직이지 않았다.

세수나 양치질 목욕하는 것까지 일체 하지 않았다.

언제나 오직 한결 같이 앉아 있을 뿐으로

잠을 자기 위해 눕거나 벽에 기대는 일도 전혀 없었으며

사람들이 절을 찾아와 시끄럽게 소란을 피워도 그런 것에 아랑곳 하지 않았으며

귀로는 듣지 않았으며 눈으로 보지 않았고

몸으로는 일체의 감각이 움직이는 것이 없었다.

실로 상상하기 어려운 숨쉬는 등상불 等像佛 같았다.

면벽 일년 동안 몸도 씻지 않고 옷도 갈아 입지 않아 땀에 찌든 누더기 옷과 머리에는

싸락눈이 내린 것처럼 이가 들 끓었으니

이가 얼마나 많은지 마치 두부 비지를 온 몸에 뿌려 놓은 것 같아

이들의 놀라운 번식으로 스님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으며,

그렇건만 한 번도 긁거나 간지럽다는 생각조차 없는 것 같았다.

과연 달마대사의 구년 면벽 보림이 이러 했을까?

사람들이 옷을 갖다 놓고 옷 좀 갈아 입으시라고 하여도 듣지 않고 시종 여일하게 똑 같았다.

그와 같이 철저한 용맹정진 속에 안으로 일어나는 번뇌 망상과

밖에서 오는 어떤 유혹도 털끝 만큼도 동요되지 않았는데

몸에 남아 있는 습기 習氣를 항복시키고 생사에 자유로운 법력을 길러 시험하셨다.

경허 스님의 이러한 용맹정진은

과거 조사 스님들의 정진에도 좀처럼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일이었다.

이와 같이 무서운 정진을 계속하여 일년을 채운 어느 날 짚었던 주장자를 문 밖으로 던지며

입었던 옷들을 벗고 길게 팔다리를 펴면서 쾌활하게 노래를 불렀다.

한국의 달마 達磨라고 부르는 경허 스님의 오도가 悟道歌는 이러 하엿다.

 

홀문인어무비공 忽聞人語無鼻空 홀연히 콧구멍 없다는 소리에

돈각삼천시아가 頓覺三千是我家 확실하게 깨닫고 보니 삼천대천 三千大千세계가 내 집일세.

유월연암산하로 六月燕巖山下路 유월 연암산 밑에서

야인무사태평가 野人無事太平歌 농부들은 일 없이 태평가를 부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