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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허법어 경허선사

경허선사 일대행적 鏡虛禪師 一代行蹟 한암 찬 漢巖 撰

by 성천하지미미자 2023. 5. 21.

경허선사 일대행적      한암 지음

 

 

 

먼저 비통한 숨을 내쉬며 쓰는 경허화상의 행장

 

금강경에 이르기를 마땅히 오백세 뒤에 그 때 한 사람이 있어 이 경을 얻어 들어 맑은 마음으로 믿는 마음이 생기나니 마땅히 알아라 이 사람은 제일 얻기 어려운 공덕을 성취하였느니라. 하였고

대혜화상이 이르기를 만약 이 중간에 번잡하고 복잡한 가운데 발심하여 공부한 사람이 없었다면 몇 사람이나 불법을 얻었을 것이며 오늘에 이르렀겠느냐

용맹스런 마음으로 법의 근원에 도달한 사람이 말세의 불법에도 없지 않을 것이므로 부처님이 이와 같이 말씀을 하셨으며 또한 보존하기 어려운 불조의 혜명을 반드시 그런 사람이 나와 계승하게 되나니 이와 같은 말을 알아 누가 능히 여기에 장부의 뜻을 갖추어 자신의 본성을 사무처 깨달아 그 제일 공덕을 성취하여 지혜광명으로 광대한 뜻을 저 후오백세 뒤까지 유통하게 하였으랴.

내가 존경하는 선사 경허화상이 이런 어른이시다......

화상의 휘는 성우요, 처음 이름은 동욱이었으며,경허는 그 호이다. 속성은 여산송씨요, 그 부친은 두옥이었으며 그 모친은 밀양박씨였다.

헌종 15년 1849년 기유년 8월 24일에 전주 자동리에서 탄생하셨다.

분만후 삼일이 지나도록 울지 않음을 목욕시키다 비로소 울어대니 사람마다 기이하다고 말하였다.

일찌기 부친의 상을 당하여 의지할 곳이 없어 아홉살 때에 모친을 따라 경기도 광주군 청계산 청계사에서 계허스님을 의지하여 머리깎고 계를 받았다.

속가의 형이 한 분 있었는데 공주 마곡사에서 수계 득도하였다.

그 모친도 삼보에 귀의할 생각을 내어 근면하고 정성스럽게 부처님을 믿어 두 아들을 출가시켰고 나이는 어리지만 뜻은 큰 사람과 같아 비록 어려운 생활이지만 피로하고 싫어하는 기색이 없이 나무하고 물 긷고 밥을 지어 그 은사스님을 모셨다.

어언 14세에 이르도록 글을 배울 기회가 없었는데 어느날 선비 한 분이 와 여름을 함께 지나게 되어 그의 처소를 배회하다가 그 선비가 곁에 앉히고 천자문을 시험삼아 가르치니 가르침에 따라 똑바로 외우고 역사와 시, 서,등 한서 5,6권을 단번에 외워서 가르치는 사람으로 감탄을 금치 못하며 말하기를 이 아이는 참으로 비상한 인재로다 옛 사람이 이르기를 천리를 달리는 말이 주인을 만나지 못해 훌륭한 주인을 만나지 못해 부질없는 일에 얽메어 아깝게 피곤한 시간을 보내는구나.  하였지만 이 아이는 뒷날에 반드시 큰 그릇이 되어 일체 모든 사람의 지도자가 되고도 남을 자격이 있겠다.  라면서 그래 네가 가서 있을 만한 곳이 그리 없단 말이냐 한탄하였다.

그 후 은사스님이 속세로 환속하게 되어 그 재주를 더 배우게 하지 못함을 애석히 여겨 마음껏 배우게 하기 위해 충청도 계룡산 동학사 만화 화상에게 추천하여 보내게 되었다.

만화 화상은 당시 전국에서 제일가는 대강백으로 선교를 지도하는 대종장이었다.

만화스님이 소년의 뛰어난 기상과 영리함에 크게 기뻐하여 붇잡고 가르침에 몇달이 안되어 교의를 토론하고 좋은 글을 짓는데 일과를 보내고 대강 한 번 보면 외워서 마침이라 더 배울게 없어 날마다 잠만 자다가도 다음날 경의 뜻을 물으면 그 글의 뜻에 자세히 해석하기를 나무와 풀을 함께 태운 것과 같음이라.

스님이 그 잠이 많은 것을 문책하기 위하여 특출한 재주와 지혜를 시험하기 위해 원각경 가운데 소초 5,6권과 10여권을 과제로 정하여 주었다. 그러나 늘 잠만 자다가도 과제로 정해준 소초를 빠짐없이 다 외우니 대중이 미증유한 일에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한다.

그로부터 재주와 이름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교호의 강원에 참석하여 공부하니 날마다 진보가 있었고 더욱더 학문을 넓혀 유불선 삼교에 능통하지 않음이 없었다.

천성이 대범하고 활달하여 외형으로 일체 꾸밈새가 없었으며 성격은 활활 타오르는 불꽃과 같이 대중과 함께 지나는데 옷을 입고 단정히 앉아 싫어하고 좋아하고 부끄러워하고 자랑하는데 조금도 동요 됨이 없이 홀로 자신을 파탈하여 위의를 짓는 것을 하지 않았으며 어리석은 듯 하였다.

강사스님이 보고 이르기를 참으로 대승의 법기로다. 하고 너희들이 도저히 미칠 수 없는 사랍이다 하였다.

23세에 이르러 대중들이 강의를 열어 줄 것을 바람에 따라 동학사 강원에서 교리를 강론하게 되었다.

이 소문이 자자하여 사방에서 학자가 몰려와 귀의하여 배움을 청하였다.

31세에 은사스님이었던 계허스님이 전날 거두워준 스승에 대한 정이 생각나 한 번 찾아 뵙고 싶어 대중에게 알리고

출발하여 가던 길에 홀연히 폭풍우를 만나 급하게 한 집의 처마밑에서 겨우 비를 피하려는데 주인이 나와 몸을 밀치고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하는 수 없이 다른 집을 찾았으나 다 똑같았다. 십여가구를 더 찾아 헤메었으나 마찬가지라 큰소리로 왜 그러냐구 물으니 동네사람이 말하기를 콜레라가 유행하여 누구를 막론하고 서서죽고 앉아죽는다고 말한다.

경허화상은 그 말을 듣고 모골이 송연하고 심신의 맥이 풀리는 듯 하였으며 목숨이 경각에 닥친듯 하였다.

목숨의 생사는 한 호흡에 달린 것이다. 일체 살아온 일들이 꿈처럼 아득하고 푸른 청산만을 생각하고 지금까지 미련하고 어리석게 문자공부에 메달린 것이 한스러웠다. 조사의 도를 찾아 참구하고 삼계를 뛰어넘는 공부를 하는데는 학문이 오히려 방해가 되는지라 이에 분한 마음이 생기고 평상시 외우던 공안으로서는 학습하던 습성이 남아 있어 일일이 해석해보려는 마음뿐이라 이렇게는 더이상 참구하여 허송세월 할 수 없음이라.

오직 영운선사가 지시한 驢事未去 馬事到來 나귀의 일도 가지 않았는데 말의 일이 닦치는 구나.의 화두를 잡고 마음을 은산철벽에 부딪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것이 무슨 도리이고? 하는 의심이 들어 산으로 돌아와 대중들에게 강의을 폐한다고 말하고, 그대들은 인연 따라 좋은 데로 가시오 나는 이 곳에 있지 않을 테니 나와의 인연은 잊어 주기를 바란다. 하였다

이로부터 문을 걸어 잠그고 단정히 앉아 오로지 밤을 새워 정진하는데 졸음이 오면 송곳으로 찔러가며 칼을 갈아 턱밑에 대고 용맹정진하였다.

이 같이 하기를 3개월이 지나 살피는 화두가 순일해지고 혼잡하지 않아 일정하게 되어가던 어느 날 한 사미승의 말을 듣게 되었다.

그 사미승의 부친이 이처사로 처사가 속가에서 다년간 좌선을 하여 개오처 開悟處 혹은 견처 見處가 있다고 사람들이 말하였다.그리하여 이처사로 부르게 되었다.

그 사미승이 집을 찾아가 이처사와 이야기를 하는 중에 처사가 말하기를 중은 필경에 소가 되리라 하였다. 사미승은 대답하기를 중이 되어 마음을 밝히지 못하고 다만 신도들의 시주물만 받아 먹었으므로 반드시 소가 된다는 것은 베품의 은혜에 얽혔기 때문입니까? 하였더니 처사가 크게 웃고 말하기를 소위 출가 사문이라는 자가 대답이 그래가지고야 어찌 도리를 깨달았다 할 수 있겠느냐? 저는 아직 선지를 깨닫지 못해 그러하오니 어떠한 대답을 해야 합니까? 어째서 이르지 못했느냐? 소가 되어도 고삐 뚫을 콧구멍이 없다고 말을 해야지. 하였다.  그 사미승이 대답을 못하고 돌아와 여러 스님들께 인사하니 너희 부친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더냐? 하고 물은 즉 나는 도무지 무슨 소린지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하니 스님들이 말하기를 지금 조실스님이 선방에서 참선중으로 아주 열심히 하여 잠 자는 것도 밥 먹는 것도 잊어버린 채 매우 긴박하게 하고 있지만 화상이 이도리를 아는지 모르지만 한 번 물어 보아라 하였다.

사미승은 이처사의 말을 화상에게 전하였다. 소가 되어도 고삐 뚫을 콧구멍이 없다.는 말을 듣고 화상이 홀연히 일어나 禮를 하고 이처사의 소가 되어도 코 뚫을 코가 없다는 말에 무엇에 한 방 얻어 맞은 것 같이 화상의 움직이지 않던 눈이 움직이며 빛을 발하였다.

옛 부처 태어나기 전의 소식이 활연히 눈앞에 열려 산하대지가 꺼지고 나와 만물이 함께 비어져 옛 사람이 크게 쉴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하여 백가지 천가지 법문과 한량없는 묘한 이치가 당장에 얼음 녹듯 녹아내리고 꽉꽉 누르고 있던 짐들을 벗어 버렸다.  때는 고종 16년 기묘년 1879년 겨울 11월 보름이었다.

心外無佛이라 마음밖에 부처 없어 눈에 보이는 하얀 눈과 밝은 달 높은 산에서 흘러 내리는 물 낙락장송 소나무 밑에서 맑은 밤 하늘 이 모두가 다 좋은 소식이요 진면목이다.

이 모두가 다 참 도리이며 다른 경계가 아니다. 이 한가지 도를 드디어 알아 높은 방장실에 드러누워 사람들의 드나드는 것을 상관하지 않았으니,

만화스승이 와서 둘러 보고 무슨 까닭으로 드러누워 일어나지 않는고 물으니 화상은 대답하기를 일 없는 사람은 이러합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스승은 어이없는 얼굴을 하고 나가버렸다.

그 다음해 1880년 경진년 봄 연암산 천장암으로 자리를 옮겨 주석하였는데 그 곳에는 스님의 형인 태허스님이 모친을 모시고 있었다.

화상이 게송을 읊고 노래로서 깨달아 얻은 경지를 부르니 우뚝하고 높아 특출하였으니 보통 사람하고는 달랐다

깊이는 천길 만길 깊었으며 넓기로는 광대무변하여 잡을 수 없는 파도같았으며 말로서는 표현할 수없는 실상이었으며

옛 조사들의 가풍과 같았다.

게송으로 이르되  忽聞人語無鼻空  頓覺三千是我家  六月鷰巖山下路  野人無事太平歌

홀연히 사람들의 콧구멍 없다는 소리를 듣고

확연하게 깨닫고 보니 삼천대천세계가 내집일세

6월 연암산 아랫 길에

농부들이 일 없이 태평가를 부르네.

하는 悟道歌가 있으며 사방을 둘러 보아도 사람이 없어 의발을 누구에게 전할꼬 의발을 누구에게 전한단 말이냐?라 하셨다. 사방을 둘러 보아도 사람이 없구나  하는 이 四句를 오도송의 첫 머리와 마지막에 장식하여 장탄식을 하신 것이다.

그의 스승과 도반의 연원이 이미 끊어저서 인가하고 증명을 주고 받을 곳이 없어짐이라

대중에게 이르시기를 무릇 조종의 문하에서 마음의 심법이 근본이 있고 근거가 있어 전수되어야 하는데 뒤죽박죽 석여서 어지러워서는 불가하다. 

예전에 황벽스님이 백장화상의 회상에 계실 때 스승 마조스님의 고함치는 할로 학인을 가르치시던 것을 듣고 깨달아 백장선사의 법을 이어 받아 선풍을 부흥시켜 교화하였으며 크게 깨달은 황벽스님의 방망이를 얻어 맞은 임제스님이 크게 깨달아 몽둥이를 삼켜 황벽스님의 법을 임제스님이 이어 받은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벽계정심선사로 들어와 중국에서 법을 얻은 모든 계통이 멀리 이 곳에서 龜谷스님과 震默스님을 성인으로 변화시켜 법을 이었다,

저 서산대사에게 법이 이어지고 그후 스승과 제자가 서로 이어줌이 엄중하고 은밀하게 전해지는 것이 이와 같은 것이다.

마음으로써 마음에다 도작을 찍으니 마음이 마음에다 서로 도장을 찍는 것과 같은 것이다.

슬프다 !  성인께서 오신지 오래되어 그 도가 이미 쇠퇴한 시대에 본래면목을 갖춘 스님이 나타나 죽이고 살리는 화살을 자유자재로 행사하는 것은 온전하게 또는 반쪽이던 성인을 얻고자 하는 까닭이다.

은밀하게 바른 종법을 지니게 한것은 캄캄한 어둠속에서 밝은 등불을 얻은 것이요 법이 끊어진 곳에서 법을 소생시킨 것이다.

나는 비록 도가 충실하지 못해 일생동안 성품을 점검하지 못했으나 이 마음자리는 명백하여 지금 늙은 몸으로 훗 날 나의 제자가 마땅히 나의 법을 이을 것이로다.

용암장로가 그 심원한 도의 정통연원을 정리하므로 만화강사가 그 법을 이어받았으며 내가 스승으로부터 도업을 이어받은 것이다.

오늘 날 가르침의 유훈을 따라 흘러가는 물의 근원을 거슬러 가면 화상은 영월봉률詠越鳳律선사에게 계대를 잇고, 봉률스님은 용암혜언 龍巖慧彦에게 계대를 이었고, 혜언스님은 금허법첨 錦虛法沾선사에게 계대를 잇고, 법첨선사는 율봉청고 律峰靑杲스님에게 법을 이어주고, 청고선사는 靑峰巨岸 청봉거안스님에게 법을 이어주고, 거안스님은 호암체청 虎巖體淨스님에게 법을 이어서, 청허선사는 편양에게, 편양선사는 풍담스님에게 전하고, 풍담선사가 월담스님에게 전하고, 월담선사가 환선스님에게 전하니, 청허선사의 12세손이 되었으며 환선선사의 8세손이 되었다.

오래 머물렀던 곳은 湖西에서 지냈으며 서산의 개심사 부석사 홍주의 천장암에서 쉬면서 도를 단련하던  장소이다.

51세 기해년 가을 주석처를 옮기니 영남 가야산 해인사로 때는 고종 광무30년 1899년이었다.국왕이 경전을 인쇄하기 위해 칙명을 내리고 수선사를 세워서 학자들과 거처하시니 모든 대중이 화상을 종주로 추대하였다.

법좌에 올라 법을 주고 받는 法擧揚으로 본분을 바로 보이시고 불조께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주는 이심전심을 명백하게 선양하시니죽이고 살리는 殺活의 작용을 행사하는 것이 金剛寶劍 금강보검과 같고 사자왕 獅子王의 위엄과 같아   듣는 자로  하여금 견처見處 곧 작용처를 확실하게 함이니 붙들고 있는 집착을 끊고 세속에서 묻은 때를 말쑥하게 씻어

분명하고 확실하게 지도하였다.

결제날에 법상에 올라 주장자를 한 번 내려치고 이르기를 삼세제불과 역대조사 천하선지식이 이 곳에 앉아 있음이라.

하시고 주장자를 탁 치고 삼세제불과 역대조사 천하선지식이 이 소리에 나타남이라. 또 한 번 탁자를 치면서 이르시기를

삼세제불과 역대조사 천하선지식이 이 소리에 가시나니라. 대중은 알겠는가? 대중이 데답이 없자 주장자를 놓고 법상을 내려서는데, 중이 묻기를 옛 사람이 말하기를 움직이는 작용이 본래로 드날려 작용없는 곳에 떨어지지 않음이라. 어떤것이 본래면목인 古路입니까? 답하시되 둘과 하나인데 탄탄한 대로에 험난한 길이 있느니라.  어떠한 것이 험난한 길입니까? 가야산 아래 천갈래 길위에 수레와 말이 때때로 오고가는구나.  그러면 어떤 길이 탄탄대로입니까? 천길 절벽 사람이 내려갈 수 없는 곳에 원숭이가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잡은 손을 놓아 버리는 것이다,   하였다.

여름 하안거 해제날 법상에 올라 동산화상을 들어 대중에게 이르시기를 첫 가을 늦 여름에 형제가 동쪽으로 가고 서쪽으로 가는데 만리길에 풀 한포기 없는 곳으로 갈 것이나 나는 그렇지 아니하니 첫가을 늦여름에 형제가 동으로 가고 서로 갈 것이나 길 위에 잡초를 낱낱이 밟아야만 비로소 얻을 것이니라. 저 동산화상의 말과 같은가 다른가? 대중이 대답이 없으니 말 없이 계시다가 이르시기를 대중이 대답이 없으니 나도 대답을 하지 않으리라. 하시고 바로 자리에서 내려와 방장실로 돌아가시니 바로 잡아 보이시는 것들이 다 이러하니라.

영남의 영취산 통도사 동래 금정산 범어사 호남의 화엄사 송광사가 다 화상께서 거쳐간 곳이요, 이 뒤로 사방에 선원이 경쟁적으로 개설되고 발심하는 수행자가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그 때에 화상의 법을 따르는 사람마다 불법으로 때를 씻어 빛을 밝히고 안목을 열어 주시니 말세의 불법이 중흥기를 맞아 흥성하였다.

1902년 임인년 가을에 화상이 범어사 금강암에 주석하고 계실 때 동래읍 마하사에 나한전 개분불사에 청첩을 받고 증명을 서기 위해 늦게 절 입구에 다달아 길이 어두워 걷기가 불편할 즈음에 그 절 주지승이 앉아 졸다가 한 노승이 나타나 말하기를 큰 스님이 오시니 급히 나가 영접하여 들여라. 하여 꿈을 깬 주지승이 급히 햇불을 잡고 동구에 내려가니 과연 화상이 오심이라 나한의 현몽임을 비로소 알아차리고 대중에게 고하니 다들 놀라고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전날 이 스님이 별 볼일 없다고 훼방하던 사람들이 다 나와 스님께 참회를 하였다.

계묘년 가을 범어사로부터 해인사로 가시던 도중 한 구절을 읊으시니 아는 것 없이 이름만 높은데 세상은 어지럽고 위험하기만 하구나. 어느 곳에 이몸을 숨길거나. 고기 팔고 술 마시는 곳마다 몸 하나 숨길 곳 없으련마는 다만 이름을 숨기면 숨길수록 이름이 더 알려질까 두렵도다.

대개 시와 말씀하시는 뜻은 선사께서 몸을 감추는 것을 뜻하는데 세상 사람들은 전혀 알지 못하였다.

다음해 갑진년 봄에 오대산을 거쳐서 금강산을 둘러 보시고 안변군 석왕사에 들리니마침 오백나한 개분불사가 있어 여러 선덕들이 참여한 가운데 법회를 함께 열어 화상이 증명으로 참석하게 되었다.

화상께서 증명단에 올라 법문을 설하시니 한결같이 합장하여 희유한 신심으로 감탄하며 법문을 들었다.

불사를 마치신 뒤에 자취를 감추시니 그 누구도 가신 곳을 알지 못하였다.

이로부터 10년 뒤에 수월스님이 서신으로 예산 정혜사 선원에 화상의 소식을 보내왔다.

그 내용인즉 화상이 머리를 기르고 선비의 속복차림으로 왕래하기를 갑산 강계등지에서 혹은 촌에 서당에서 애들을 가르치고 혹은 저자거리에 돌아다니다가 그곳 난덕산에서 곡차를 기울이기도 한다는 소식이었다.

임자년 1912년 갑산 웅이방 도하동 글방에서 입적하시니 혜월 만공 두 사형이 곧바로 이 지방을 찾아가 영구를 받들어 다비를 모셨다.

임종시에 써놓은 게송을 접하니 곧  화상께서 입적하신 뒤 다음해 계축년 7월 25일 이었다.

그 동네 사람들한테 들어 보았다. 노화상께서 어느날 울타리 아래 학동들을 살펴보시고 잡초를 말끔히 매어 놓으신 뒤 그 자라에 들어 누워 일어나시지 않으시고 말씀하시기를 내가 아주 피곤하구나, 하시었다

여러 사람이 부축하여 방안으로 모셨으나 식사도 안하시고 말씀도 안하시고 또한 불편하신 신음소리도 내지 않으셨다 한다.

그 다음날 새벽이 밝을 즈음에 앉아 붓을 들어  게송을 쓰시니 마음달이 홀로 둥글어 그 빛이 만상을 삼켰도다.빛과 경계 다 비었거늘 다시 이것이 무슨 물건인고? 둥근 원상을 그려놓으시고 붓을 던져버린 뒤 우측으로 허리를 눕히시고 암연히 천화하시니 임자년 4월 25일이었다.

우리들이 예를 갖추어 장례를 올리니 해가 솟고 있었다.

슬프고 애석함이로다.이러한 대선지식이 세상에 출현하심은 실로 만겁에 다시 만나기 어려움이로다.

우리들 무리는 비록 잠깐 친견하게 되었지만 오래 모시고 參學하여 배우고 능히 입적하신 날을 참석하지 못하였으나 쾌활하신 모습이 옛날 도인들과 입멸하신 것이 같으셨으니 이 때에 여한은 가히 다하였음이라.

화상께서 출생하신 것은 1849년 기유년이오 입적하신 것은 1912년 임자년이었으니 9세에 출가 하시어 세수는 64년 법랍은 56년이니 화상의 법을 이은 제자는 네 사람 弟子四人이었다.

침운현주 枕雲玄住스님은 도를 행한 곳이 저 영남의 표충사와 범어사에서 법을 설하시고 게송을 지으시니 이로써 교화를 하셨다고 말하였고,

혜월 혜명선사와 만공 월면선사 두 선형이 어려서부터 참례하여 화상을 모시고 깊이 현묘한 종지를 각각 얻었다고 말하였다,.

화상께서 하나의 방편을 제시하고 방편으로 제접하여 크게 교화를 행하시니 나는 비록 민첩하지는 못하였으나 일찌기 깊고 그윽한 말씀을 듣고 참례하였음이라.

다못 화상의 진면목을 내가 거듭 설파하니 그러하므로 감히 법을 짊어진 네 제자가 이를 위한 것이다.

대저 행장을 기록하는데 그 사실이 헛되지 않음이로다.

화상이 도를 깨달아 교화하기까지가 그 인연이 진실로 위에서 말한 것과 같아 만약 그 걸어 오신 길을 논하자면 몸은 장대한 형체를 갖추었고 뜻은 고지식하며 그 기상은 강한 무리들에게 우렁찬 큰 종소리와 같아 걸림이 없는 변재를 갖추어 八風경계에 움직이지 아니함이 마치 산과 같고 실행하고 그치는 것이 함이 없이 하시며 인간에 정의로운 진리를 깨우치게 하시고 드시는 음식은 자유롭게 하시되 聲色에 구애됨이 없으셨고 광연무애하게 유희하사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의혹과 비방을 하게 하며 광대무변한 마음으로 둘이 아닌 문을 증득케 하고 모방함을 초탈하여 스스로 여여하고 현묘한 종지를 송두리째 통달하여 도 닦는 무리들을 굴복시켰다.

또한 때를 잘못 만남이 슬프고 강개함이라, 몸을 숨기기 위해 저 용렬한데 내려 자신을 중생들에게 던져주어 다스리시고 도로써 즐기시니  홍곡 鴻鵠의 큰 뜻을 알지 못하면서,  홍곡의 큰 뜻으로 깨닫지 못하였다면, 어찌 능히 생각이 구애되지 않으리오, 이는 작은 졸장부들이로다.

화상이 읊으신 시에 마시는 술잔에서 방광을 하고, 색도 그러하고 탐욕과 번뇌를 나귀에 실려 보내니, 부처와 중생을 내 알 바가 아니고, 평생을 취해 있는 미치광이 중이로다. 하는 구절을 베껴놓고 보니 그 일생 지나온 바가 지극히 편안한 곳에 계셨음이다.

밥을 먹고 기운을 차려 문을 닫아 걸고 하루종일 침묵으로 말이 없었으며, 사람을 보아도 무심으로 기뻐하지 않음이라.

저 대도시의 사람들이 혹 권하여 교화를 하시되 나의 발로는 서울을 다시 밟지 않으리라. 하고 서원하시니 그 탁월하고 굳센 지도력은 이와 같으셨다.

천장암에 주석하실 때 한 벌 누더기 옷으로 차가운 겨울이나 찌는  듯한 여름에도 한 번도 갈아 입지 않으시고 모기나 빈대가 몸을 찌르고 이가 득실하여 밤낮으로 뜯어 먹어 괴롭히고 온 몸이 헐어서 벗겨져도 홀연히 자세를 움직이지 않아 높은 산과 같았으며 어느 날 구렁이가 벽을 뚫고 들어와 어깨와 등에 또아리를 틀고 있어 곁에 사람이 깜짝 놀라 알려 주어도 태연한 마음으로 조금도 동요가 없이 무심하니 구렁이는 알아서 기어 나갔다.

도의 疑精이 익지 않았다면 누가 감히 이와 같을 수 있으리오. 한 번 앉아 여러 해를 지냈건만 한 순간 찰나와 같이 하였다.

어느 날 아침에 한 구절 게송을 읊으시니, 세상 청산 어느 때나, 봄에 꽃피지 않는 곳이 없으니 누가 惺牛의 일을 묻는다면, 石女의 노래속에 劫外歌를 부르리.

드디어 주장자를 꺾어 던져 버리고 문 밖으로 훨훨 날아 산에서 내려와 방편을 따라 교화를 하니 음흉한 것을 벗어 버리고 모든 사소한 규칙에서 벗어나니, 사람들이 미워하고 싫어하는 세상살이 먼지와 섞이고 혹은 소나무 정자에 누워 풍월을 읊는 그 초연하고 편안한 취미는 세상 사람들이 헤아릴 수가 없는 것이다.

어느 때는 대중에게 설법을 하실 때 부드럽게 하시고 아주 세밀하게 연설하시니 그 미묘한 자취는 가히 불가사의다.

선하거나 악하거나 닦는 것을 판단하지 아니함으로 판단함이라 문장이나 필적이 다 보통을 넘어섬이라 참으로 세상에서 보기 드문 위대한 사람이로다.

슬프구나 ! 출가한 사람이 다 화상과 같이 용맹스럽게 정진하여 활발하게 나아가 생사대사를 분명하게 판단하므로 등불과 등불이 서로 이어져 상속할지어다.

九山 법손이 서로 교화하여 융성하고 十六宗派가 선으로 통합한 것을  어찌 홀로 할 수 있으리오 그러나 융합하고 통합하는 것이 특별한 것은 아니라 잠시 누를 뿐이다.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근본 지혜광명의 종자가 저 오탁악세중에 영원히 단절 되지 않음이로다.

이것을 어찌 깊이 마음으로 신봉하여 진진찰찰 부처님의 은혜 갚는 이름이 아닐까 보냐?

우리들의 근기로서는 향을 사르고 깊이 축원하여 간절한 마음을 갖춘 연후에 학자라야 화상의 깊은 법의 교화를 가히 배울 수 있을 것이다.

화상의 행리만보를 보고 불가하다고 하는 사람들은 화상의 정법을 알지 못한 까닭이다.

또한 법을 의지 하는 사람은 그 진정한 묘법을 의지할 뿐이지 사람의 행리만을 의지하지 말 것이니  그 율의의 있고 없음을 의지하지 않는 자라야 또한 스님을 의지할 수 있으리니 문자에도 의지하지 말고 또 얻고 잃고 옳고 그름의 시비득실의 시비거리도 보지 않아야 도를 배우는 사람이니 필경에는 법도 버려야 하거늘 저 시비득실에 걸릴까 보냐?
그러므로 원각경에는 말세 중생중에 발심 수행자가 마땅히 일체 바른 지혜의 견해를 구하는 사람은 마음에 주장하는 마음이 없이 하되 현대의 티끌세상의 마음이 항상 청정함을 보여 오히려 모든 허물된 것을 찬탄하였으니 청정한 율행을 지키는 사람이나 율행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나 상관하여 생각하지 말라.

이와같이 무심하게 지나다 보면 곧 무상정등각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성취할 것이니저 선지식의 네가지 威儀가운데 항상 청정함을 드러냄과 가지가지 중생의 허물과 화근의 근심을 나타내어도 마음에 교만함이 없고 악한 마음이 일어나지 않게 하라. 하시고 금강경에 만약 형색으로 나를 보려 하거나 음성으로 나를 구하려 하거나 한다면 이 사람은 삿된 도를 행하는 사람이니 능히 여래를 보지 못할 것이다 하였다.

또 보조국사가 이르기를 대저 마음을 움직여 참선을 수행하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신심의 뿌리를 심기 위해 五戒와 十善, 四諦, 十二因緣, 六度,등 법을 믿음은 정법을 믿는 것은 아니다. 하시었고 자기의 마음이 부처이니라 . 하였으며

한 생각도 내지 않는 것은 三祗刧이 공한 것이니라 하시니 이와 같이 알고 믿으면 이것이 正因이 되는 것이니 戒니 諦니 緣이니 度니 하는 것은 오히려 正因은 아닌데 하물며 저 율의가 부당한 것은 말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른 견해 正見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청정한 道眼으로 가려서 택할 줄 알아야 하니 가히 다른 요망한 삿된 믿음을 구하여 큰 일을 그르치지 말아야 될 것이니라. 하였고, 古德이 이르기를 다만 바른 눈 正眼이 바로 박힌 것을 귀하게 생각할 것이지 남의 수행의 자취는 중요하지 않으니라. 하였으며 또한 이르기를 나의 법문은 선정 해탈 持犯 修證을 논하지 아니하니 오직 부처님의 正知見을 통달함이 아니냐? 먼저 정안을 열고 뒤에 行履를 논하는 것은 삿된 것이니라.

그러니 가로되 화상의 법으로 교화하는 것은 옳거니와 화상의 행동과 자취만을 보고 화상을 평론한 것은 옳지 않다.

이는 다만 그 정법을 가려서 택하여 법안을 갖추지 못한 것을 꾸짖어야 한다.

그 지나온 자취만을 보고 거리낌이 없는 사람과 또한 그 보여지는 형상에만 집착하여 능히 자신의 마음 근원을 밝게 꿰뚫치 못한 자를 경책하노라.

만약 정법을 결정하고 택하여 正眼을 갖추어 마음의 근원을 통하고 관철하였다면 그 행동한 자취는 진실된 것이니 네가지 행동 四威儀에 항상 나타남이 청정한 것이라 바깥으로 보여준 행동이나 의혹된 것에 憎愛心과 人我相을 일으킬까 보냐.

1930년 경오년 겨울에 만공사형이 금강산 유점사 선원 조실로 있을 때 편지로 오대산 속에 있는 나에게 화상의 행장저술을 부촉받았으나 내가 본래 문사가 넉넉하지 못한 것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화상의 행장을 쓴다.는 것은 진실로 감당하기 어려움이로다. 다만 그 사실을 기록하므로서 후세 사람중에 한 사람이라도 말세 불법중에 참 선지식이 출세하여 법을 폈다는 생각하기 어려운 공덕을 찬탄하여 경책이 되어진다면 우리들 무리가 망령됨에 집착하여 밖으로만 달려가고 시일을 허송세월할 뿐이다.

무수한 허물과 실수로 부처님의 정법이 손상될 것이다.  또 선사의 시문과 기록 약간을 편찬에 붙여 제방에서 전해 내려오는 禪和와 동행하였던 것을 초록하여 인쇄에 붙여 간행코자 함이로다.

 

불기 2475년

辛未1931년 3월 15일

경허 문인

한암 중원 삼가 씀

 

 

一代行蹟

 

先呼鏡虛和尙行狀

 

金剛經 云 若當來世後五百歲 其有衆生 得聞是經 信心淸淨 即生實相 當知是人 成就第一希有功德

大慧和尙 云 若不間於强項中打發得 幾人 佛法豈到今日.

盖發 勇猛志徹法眼根源者末法不無故, 佛祖垂如是言,又罕有其人慧命難保,苦有如是言,孰能於此具丈夫之志,而徹悟自性,成就其第一功德,而以大智慧光明義廣大流通,於後五百歲後也.

哉繫,我先師鏡虛和尙是也,

和尙諱惺牛,初名東旭,鏡虛其號,俗姓宋礪山人,考諱斗玉,妣密陽朴氏,以憲宗十午年 己酉 八月 二十四日生,于全州之自東里,分娩後三日,不啼反浴身,始發, 兒聲人皆稱, 神異焉.

早喪所怙,九歲,隨慈母上京,投廣州,淸溪寺, 依桂虛師,祝髮受戒,

而有兄在公州麻谷寺,得道,

皆其慈母, 歸心三寶,念佛誠勤故,捨二子,爲出家也,年尙幼,而志若巨人,雖遇困苦,無疲厭心,負薪汲水,化飯供師.

年至十四,不遑學文,適有一儒者,來同過夏,而以渠之僑居,逍遺招坐,其傍試授以 千字文,隨學輒誦,又敎以通史等,書日誦,五六之嘆,曰, 此兒眞非常才也,.古所,謂千里之驪,不遇,白樂困於鹽車也,.他日 必成大器,救度,一切人去矣居無何?.

桂虛師, 還俗,惜其才學而未就,馳書薦送於鷄龍山東鶴寺,萬化和尙,

和尙即,當世講匠也,.

見其氣宇英,拔喜,而提誘,不幾月,善屬文討敎意,日課經疏,一覽,便誦終,日打睡,而翌日論問時,其消析文義,苦析薪秉燭,.

講師責, 其多睡,而欲試,其才特定課於.圓覺經,.中, 疏抄並五六紙,乃至十餘紙,亦如前睡,而誦,亦如之衆,皆嘆,其未曾有也,.

自此, 才名高著遍,參嶠湖講院,學日進,而聞益博,至於儒典,莊老, 莫不精通,,.

天性疎闊,外無苟희(食希),盛炎看經,衆皆着衣正坐,不勝苦汗,獨破脫子,若不事形儀,一愚,.

講師,見之謂門人,曰,.眞大乘法器冶,.汝輩不及,.

二十三歲,以衆望開講,於東鶴寺,論敎義,波瀾洋洋,四方學者多歸之,一日,.

思,其前日,桂虛師眷愛,之義,而欲一訪問,於其廬遂告衆,發行至中路,忽風雨瀑,至急步入一家簷頭.則迫逐不受,移往他家,而亦然,.

一洞數十家,皆逐之甚急,而高聲呵責,此處여疫大熾染者,立死於汝人,入於死地,

和尙, 忽聞其言, 毛骨竦然,心身惚慴,似箇大限當頭,命在呼吸間,

一切世間, 都是夢外,靑山仍自念言,此生寧爲痴呆漢,.不爲文字所狗繫,參尋祖道,超出三界,發願已推念其平日,所讀公安,以義學習性,皆生知解,無參究分,.

唯靈雲禪師所示,.驢事未去 馬事到來,.話解之不得,如撞着銀山鐵壁, 即看,. 是甚道理,. 還山候, 逐散衆,曰,.君等隨緣好去,我之志願不在,.

此閉門,端坐,專心究看,夜欲將睡,引錐刺股,或磨刀當이(턱이),

如是過三箇越,所看話頭,純一無雜,有一沙彌,.

近侍俗姓李,其父坐禪多年,自有開悟處,人皆號爲李處士,.

沙彌之師傳者適性其家.與處士談話次,處士曰,. 爲僧者畢竟爲牛,.其師曰,爲僧,而未明心地,但受信施,則必爲牛,而償其施恩,.

處士呵曰,.所謂沙門而答話,如是不諦當乎?,.曰,.我不識禪旨,何答之卽是,.處士曰,.何不道,爲牛則,爲無穿鼻空處,.其師默默,.,

而歸謂沙彌曰,.汝之嚴父,有如是說話?,.而我都不知,其伏麽意旨,.今祖室和尙做禪甚,緊廢寢忘饌,當知是理願,.

師傳往聞其師,.欣然, 而去禮畢,而坐傳李處士之言,到牛無鼻空處,和尙眼目定動撞發,.

古佛未生前消息,豁爾現前,大地平沈,物我俱忘,直到古人大休歇之地,百千法門,無量妙意,當下氷消尾解,.

時則高宗十六年,己卯冬十一月望間也,.心外無法,滿目雪月,高岑流水,長松下,永夜淸霄,何所爲眞,可謂這箇道리,非汝境界,同道方知遂,高臥方丈,不關人之出入,.

萬化講師入見,亦臥而不起,.講師,曰,.何故長臥不起,.대왈,.無事之人,本來如是,.講師無言而退,.

翌年庚辰,春來住於鷰巖山,天藏庵,兄,太虛禪師,奉慈母在,.

此故也,有誦與歌,發揮其悟,證虛嶷嶷,然崖岸千尋,蕩蕩然名言俱絶實不讓,.於古祖師家風矣,其頌曰,.

忽聞人語無鼻空

頓覺三千是我家

六月鷰巖山下路

野人無事太平歌,.

其歌有,.四顧無人,衣鉢誰傳,衣鉢誰傳,.

四顧無人,.之四句,冠於首結於尾,此深嘆,.

其師友源已絶,無印證相受處也,

嘗示衆曰,夫祖宗門下,心法傳授,有本有據,不可錯亂,.

昔黃檗聞,百丈擧馬祖할,而悟道嗣百丈,興化於大覺棒下,悟臨濟喫棒底消息,嗣臨濟於滅後,.

我東國碧溪入,中國得法於總統,而來遠嗣龜谷震默,以應化聖嗣法,.

於西山滅後,其師資相承嚴密如此者盖材,於以心印心,心心相印也,.

嗚呼 ! ,.時降聖遠,其道已廢然間,有本色衲子興起以,殺活箭射,得一介半介,聖人故隱,隱地扶特他正宗,來如暗得燈,似絶復生,.

余雖道未充,而性不檢,一生所向期在,於此一着子明白,.而今老矣,日後我弟子,當以我嗣法,於龍巖長老,以整其道統淵源,而以萬化講師,爲我之受業師可也,.

今遵遺敎,而沂法源流,則和尙嗣詠月奉律,律嗣龍巖慧彦,彦嗣錦虛法沾,沾嗣栗峰靑杲,杲嗣靑峰巨崖,崖嗣虎巖體淨,而淸虛傳之鞭羊,鞭羊傳之楓潭,楓潭傳之月潭,月潭轉之喚惺和尙,於淸虛爲十二世孫,而於喚惺爲八世孫也,.久住湖西二十餘年,西山之開心浮石,洪州之天藏,皆棲息鍊道處也,.

己亥秋移錫于,嶺南伽倻山,海印寺,時高宗,光武三年也,.有勅旨印經,又建修禪社居心學者,而衆皆推和尙爲宗主,.

陞座擧揚直示本分,用白점(잡을점)手振,殺活機,可謂金剛寶劍獅子全威,聞者皆見,亡執謝酒然若換,骨洗腸矣,.

結制上堂점(점주장)柱杖一下,.云,.三世諸佛,歷代祖師,天下善知識,老和尙總在這裡,.又一卓劃來,.云,.三世諸佛, 歷代祖師,天下善知識,.老和尙總隨來也,.又一卓劃去,.云,.三世諸佛,歷代祖師,天下善知識,老和尙總隨去也,.大衆還會麽?,.衆無對,擲柱杖下座,.僧問,古云,動容揚古路不墮,悄然機如,.何是古路?,.答,.古路有二. 一坦路一險路,.如何是險路?,.伽倻山下千岐路車馬,時時任往來,.如何是坦路?,.千尋絶壁,無人到唯,有猢孫(원숭이손)倒上樹解?,.

夏上堂,擧洞山示衆,.秋草夏末,兄弟東去西去,直須向萬里,無寸草處去,余則不然,秋草夏末,兄弟東去西去,路上雜草一一踏着始得與,.洞山語是同別?.衆無對良久,云,.衆旣無對,余自對去,.便下座歸方丈,其直截提示類皆,如此而,.

鷲山之通度,金山之梵魚,湖南之華嚴,松廣皆和尙遊歷處也,自後禪院,四方爭說,發心衲子,亦觀監而雲興,.

時順間洗佛光明,開人眠牧,末有如此之盛也,.

壬寅秋,和尙,住梵魚寺金剛庵,邑之東摩訶寺,有羅漢改粉,佛事而請,和尙以作證,夜暮抵寺洞口,路黑難進,寺之主僧忽坐睡,一老僧,告白,.大和尙來也,急出迎之,.主僧夢覺執炬,下洞口果和尙來矣,始知羅漢之現夢,告于衆衆,皆驚異,前有毁謗不信者.皆來懺悔焉,.

癸卯秋,自梵魚往海印途中,有口號一絶,.識淺名高世危亂,不知何處可藏身,.漁村酒肆豈無處,但恐匿名名益新,.

盖市言志,可知其志在,韜晦惟求人不識也,.

翌年甲辰春,入五臺歷金剛,到安邊郡釋王寺,適有五百羅漢,改粉佛事,而諸方碩德,皆來法會共作參證和尙臨壇,唱獨能之辨,一衆合掌,呈希有之嘆,回向,

後潛跡,不知所住矣,.

十年後,自水月和尙書信來付,於禮山郡定慧禪院,而和尙長髮服儒來往,於甲山江界等地,或村齋訓蒙,或市街啣盃,.

壬子春,在甲山熊耳坊道下洞,在入寂云,慧越,滿空兩師兄,直入其地,奉樞就,蘭德山闍維得,.臨終時書偈,而還卽和尙入滅後,翌年癸丑,七月二十五日也,.

聞諸其洞中父,老和尙一日坐籬下看學童,鋤初忽臥,而不起,.曰,.子甚困也,.衆人扶入房內,不食不言,又不呻吟伸脚而臥至,.

翌日,黎明忽起坐,점(잡을점)筆書偈曰,. 心月孤圓, 光呑萬象, 光境俱亡,復是何物, 尾,.作一圓像,ㅇ因投筆,右脇而臥奄然遷化,時壬子四月二十五日也,.我等備禮葬於某山,.

云鳴呼,哀哉,大善知識出世,實萬劫難遇,.

而吾儕雖,暫得親見,未能久侍參學歸寂之日又未得參,快後事如古道人,入滅之時,餘恨可旣,.

和尙生於己酉,寂於壬子,九歲出家,壽六十有四,臘五十有六,有受法弟子四人,

曰枕雲玄住,行道於嶺南表忠寺,梵魚寺,說法書偈而化,.

曰慧月慧明,曰滿空月面,兩禪伯,自妙年參侍深得和尙,宗旨各爲,.一方師堤,接方來其化大行,而余雖不敏,亦曾參聽玄音,.

而只重先,師不爲我說破,故不敢辜,負其法恩,是爲四也,.

夫行狀者記,其實不以虛也,.

和尙之悟道,揚化因緣誠如上言,若論其行履則,身長貌高志,其果强聲若洪鍾具,無碍辯,對八風不動,如山行則,行止則止不爲,人之打之遠故,飮啖自由,聲色不拘,曠然遊戱,점(잡을점)人疑謗此,乃以廣大心,證不二門,超放自如如,李通玄宗道者之類乎折,.亦不遇而慷慨,.藏身於不滅(劣)之地,以卑自牧而,以道自樂歟,非鴻鵠難知,鴻鵠之志非大悟,安能不拘,於小郞哉,.

和尙詩有,酒或放光色復然,貪嗔煩惱送驢年.佛與衆生吾不識,平生宣作醉狂僧,.之句寫出其一生行履也,然其安處也,.

食終接氣,掩關終日,沈默寡言,不喜見人,人或勸揚化,於大都會則,曰吾有誓願,足不踏京城之地,其卓越勁挺盖如此,.

住天藏庵時,一令신(身鳥)衣寒暑不改,蚊蚋繞身,虱兒滿衣晝霄侵,齧肌뢰?瘡爛,寂然不動,坐如山嶽,一日有蛇,上身蟠蜿於肩,背傍人警告,奉然無心小焉,蛇自引去,

非與度凝精(身丸),如是哉,一坐多年,如經刹那,.

一朝,有吟一絶,.曰,.世與靑山何者時,春城無處不開花,傍人若問惺牛事,石女聲中劫外歌,.

遂拗折柱杖擲,禦門外翻,然出山隨方,宜化脫略窠臼,不存軌則,或懶遊城市,混同塵俗,或閑臥松亭,嘯傲風月,其超逸之趣,人莫能則,.

有時垂示則,極柔和心精細演,不可思議之妙旨可謂,.

善到底惡到底,不可以修斷,而修斷也,.文章筆法,豈過於人眞,希世偉人也,.

噫 ! 出家之人,皆如和尙之勇進,闊步而辨明大事燈燈相續則,.

九山融化,十六繼統豈獨專,在於前昔也,.哉非特隆和繼統,.而已抑亦,.

使一切衆生,根本智光明種子,永不斷絶於五濁界中矣,此皆非深心鳳塵刹名爲報佛恩,.哉吾所以焚香深祝者也,然後之學者,學和尙之法化則可,學和尙之行履則不可,人信而不解也,.又依法者,依其眞,正妙法也,不依人者,不依其律儀與,不律儀也,又依者師而效六也,不依者不見,其得失是非也,學道之人,畢竟法亦能捨,況於,人之得失是非乎,.

故,.圓覺經,.云,.末世衆生,發心修行者,當求一切正知見人,心不住雖,現塵勞心,恒淸淨示,有諸過讚嘆,梵行不令衆生,入不律儀求,.

如是人卽,得成就阿耨菩提,彼善知識,四威儀中,常現淸淨,乃至示現種,種過患衆生於,彼心無驕慢,不起惡念,.

金剛經,.云,.若以色見我,以音聲求娥,是人行邪道,不能見如來,.又普照國師,.云,.夫參學者,發足先植正因信,五戒,十善,四諦,十二因緣,六度等,法皆非正因,.信自心是佛,.一念無生,三祗刧空,.如是信得及乃是正因,然則,戒諦緣度等,法尙非正因,況於不律儀不乎,.

故但求正知見仁,.決擇自己淸淨道眼,不可以妄求,邪信誤着大事也,.又古德,.云,.只貴眠正,不貴行履,.又云,.我之法門不論,禪定,解脫,持犯,修證,唯達佛之知見此非,先開正眼,而後復論行履耶,.

故曰,學和尙之法化則可,學和尙之行履則不可,.

此但,責其未具,擇法眼而先效,其行履無碍者也,又策其局執於有爲相見,不能洞徹心源者也,.

若具擇法,正眼而東徹心源則,行履自然稱眞,四威儀內,當現淸淨安,.可爲外相之所幻惑,紀愛憎人我之見也哉,.

庚午冬,滿空師兄,在金剛山楡岾寺,禪院祖室,寄書於五臺山中囑余述先師行狀,余本不閑於文辭,然其於先師行狀,不敢以己之,故記其實事,以示後人一以,讚未法中,眞善知識出世,弘法之難思功德,一以警,吾輩之妄執,外走而,虛度時日,以傷損佛化之過失焉,又以.禪師之詩詠與記文,若干篇付,同行諸禪和,抄錄印刷行干也,./

 

佛紀二四七五年

辛未三月十五일

 

門人

寒巖重遠 謹撰

 

 

 

 

 

※  깨달음의 경상 鏡像

경허스님의 기록을 보면 두 번의 깨침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첫 번째는 콜레라가 유행하는 생사의 절박한 상황에서 학문을 이해하여 살림살이로 삼는 문자반야로는 죽음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깨달았고,

두 번째는 좌선에 집중하다 콧구멍 없는 소가 된다는 소리에 한 방 맞은듯 섬광이 번쩍이며 천지가 녹아내리고 진면목이 몰록 드러나 크게 깨달아 견성을 하여 지혜반야가 열렸다는 것이다.

이 때에 佛祖에 한 없는 은혜에 감사하게 되고 森羅萬象 頭頭物物이 다 부처로 顯現하는 화엄의 세상이다.

수행을 함에 있어 정신적 신체적 변화가 나타남으로 동진의 몸 상태였다면 곧바로 여래의 경지에 오를 수 있으며,

그렇지 않다면 동진수행으로 동진으로 돌아가야 한다

몰록 드러난 본성을 잡아 지키면서 무심을 유지한다.

이 뒤로도 인과의 업보에 떨어지지 않도록 팔정도에 의한 생활이 필요하고 만약 막행막식한다고 행동에 주의 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때는 업의 과보를 받은 뒤에 팔정도의 실천으로 자유롭게 되리라 믿는다,. 

인과의 법칙은 성인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