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클어진 형상으로 거리를 휩쓸고 지팡이는 살아 있는 용이 되어 허공을 부수니 이러한 가운데 특별히 무슨 좋은 생각이 나는가?
관헌에게 잡혀서
우리나라가 일제 침략정책에 의하여 을사5조약으로 한일합방을 하여 일본 경찰이 우리나라의 치안 담당을 해 가는 때였다.
비로관을 크게 만들어 머리에 쓰고 검은 장삼을 걸친 한 스님이 맨발인 채 한 손에 담뱃대를 들고 다른 손에는 시뻘건 고기를 주장자에 매달아 어깨에 메고 거리를 누볐다.
9척 장신의 괴승이 시가 한 복판을 지나가는데 그가 곧 경허화상이었다.
그 때 마침 순찰하던 헌병보조 두 사람이 정체불명의 행색을 한 이 스님의 괴이한 행동에 큰 산적의 괴수쯤으로 의심을 하고 스님을 다짜고짜 체포하여 결박해서 경찰서로 끌고 가려고 하였다.
스님이,.
이놈들아 그러면 너희들이 나를 메고 가라,.
하고 땅에 넙죽이 주저앉아 버렸다.
그 사람들은 하는 수 없이 긴 장목을 가지고 와서 스님의 양다리와 두 팔을 밧줄로 꽁꽁 묶어 두 팔과 양 다리 사이에 장목을 넣어 들쳐 메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헌병 분견대로 압송해 가는데,
스님말씀이 걸작이었다,.
흥 그래도 경허가 어지간한가 보구나 !
하고 통쾌하게 웃어 젖히자,. 헌병보조원들이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퉁명스런 소리로,
여보 대사 그게 무슨 소리요,. 했다 스님은,
나를 너희들이 이렇게 메고 가야지 내 발로 갈 수가 있느냐 이놈들아!
하고 한 바탕 파안대소 하였다.
더욱 화가 난 헌병보조원들이 스님을 내려 놓고는 손발에 묶인 줄을 풀어 주면서,
그러면 이제 걸어갑시다,.
하고 발길을 재촉하였다 경허화상은 한참을 가시다, ,. 흥 흥 ! 하고 웃어대며 큰 소리로,
경허가 그래도 어지간하다 이놈들아 그래도 내가 내 발로 걸어 가야지 네놈들한테 메어 가서야 되겠느냐,.
하고 비웃었다.
죄인으로 잡아 왔다는 스님을 독립군의 괴수나 산적두목으로 보고 일본 헌병대장이 지접 취조하였다.
아무 표정없이 묵비권만 행사하던 스님이 마침내 그에게 지필묵을 청하였다.
헌병대장이 기이하게 생각하고 지필묵을 갖다 주게 하였다.
스님은 헌병들에게 양쪽에서 두루마리를 붇들게 하고 가져다 놓은 붓에 먹을 쿡 찍어
제행무상 시생멸법 諸行無常 是生滅法,.의 휘호를 써 갈겼다,.
스님의 글 쓰는 모습을 지켜보던 헌병대장이 깜짝 놀라 자세를 정중히 하고 다시 글을 읽어 보아도 뜻은 알 수 없으나 큰 도인임을 짐작하였다.
그제야 큰 절을 올리며,
스님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알아 모시겠습니다,. 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이는 강계지방에서 박진사로 행세하던 때로 뒤 늦게 새삼스럽게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이에 앞서 공주 경찰서에 잡혀가 야마모도 순경에게 얻어 맞은 뒤 붓과 종이를 청하여 먹을 갈게 하여 썻다는 일필휘지의 글도 있다.
그 뜻을 얻었다면 거리의 한가한 이야기도 다 진리의 가르침이요.
득기지야 가중한담 상전법륜 得其知也 街中閑談 相轉法輪,.
주인을 알아채지 못하였다면 용궁에 보관된 보배로운 경전도 한갖 잠꼬대일 뿐,
실어언야 용궁보장 일장매어 失於言也 龍宮寶藏 一場寐語,.
그 경찰서장은 이 글의 깊은 뜻을 뜯어 본 뒤 곧 스님을 모시고 집으로 간 뒤 부인에게 말하기를 이 어른 시봉을 잘 해 드리고 또 어떤 행동을 하시든 언제나 하시는데로 모셔야 돼,. 하였다.
하는 부탁을 남기고 행여나 조금이라도 스님의 뜻을 거슬려서는 안된다고 극진히 봉양하게 하였다.
스님은 몇일을 두고 대우를 융숭하게 잘 받고 있다가 끝내 이 집에서 놀라운 역행을 하였다.
이 집에 보관 된 엽전꾸러미를 끄집어 내어 주머니에 가득 담아 나와 시가에 나가 술을 받아 마실 뿐만 아니라 배고픈 걸인에게도 나누어 주고 스님 마음대로 자유롭게 처신하였다.
그러나 그 서장은 일체 참견을 하지 않고 경허스님이 하시는 대로 하시게 하는 것이 도인에 대한 대접이라 부인에게도 누누히 당부하여 아무도 제지하거나 흉보는 사람이 없도록 하였다.
그러나 스님은 몇일 후 아무 말 없이 그 집을 나오셨다.
그 서장은 자기가 잘못하여 그런 큰 도인을 더 모시지 못했음을 못내 애석하게 생각하였다고 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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