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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성조 檀君聖祖

단군조선(檀君朝鮮)의 역년(歷年)과 단군왕검(檀君王儉)의 연대年代, 연수(年數) 고찰(考察)

by 성천하지미미자 2023. 4. 6.

단군조선(檀君朝鮮)의 역년(歷年)과 단군왕검(檀君王儉)의 연수(年數) 고찰(考察)


단군조선(檀君朝鮮)이라는 나라가 존속한 기간과 단군조선의 제1대 단군인 단군왕검(檀君王儉)의 실제 나이가 얼마인지에 대하여 기록에 논란이 많은 바, 정리하여 보기로 한다.  

 

 


一. 단군조선의 역년


1. 역년 1017년이라는 기록


(1) 동사집략(東史輯略) 단군조선기(檀君朝鮮紀)


(가) 기록


무진(戊辰)(중국 당 요 25년)년에 추대되어 단군(檀君)이라 하고 이미 수도를 평양(平壤)에 세웠으며 나라는 조선(朝鮮)이라 하다. 하우(夏禹)가 도산(塗山)에 제후(諸侯) 회의를 연다고 함을 듣고 태자부루(太子扶婁)를 보내어 회의에 참석케 하다. 백악(白岳. 지금의 구월산으로 일명 아사달산이라 함)으로 옮기다. 자손이 전하기를 무릇 1017년(商나라 무정 8년 갑자. 서기전 1317)에 망하고 예(濊)땅(혹 북부여라 함)으로 옮기다. 196년 뒤 (서기전 1122년)에 기자동래(箕子東來)하다.


(나) 연대 고찰


1017년 되는 해는 서기전 1317년 갑자년(甲子年)이고 196년 뒤는 서기전 1122년이 되는데 이는 무정(武丁) 8년에 맞추기 위하여 1017년이라 한 것이고 여러 다른 기록은 1048년이 되는 상(商) 무정 8년 을미년(乙未年)이라고 하고 있는데 을미년은 실제로는 무정 38년경이 되는 서기전 1286년으로 단기 1048년이 된다. 중국의 연대기록은 정확하지 않는 것이 많다.

 


2. 역년 1048년(1028년, 1038년)이라는 기록


(1) 제왕운기 권하(帝王韻紀卷下)


(가) 기록


제요(帝堯)와 더불어 무진년(戊辰年. 서기전 2333)에 나라세워 우(虞)를 거치고 하(夏)를 지나 은(殷)나라 무정 8년 을미년(乙未年)에 아사달에 입산하여 산신이 되어 나라 누리기 1028년(혹 1038년)이라. 그 뒤 164년만에 후조선(後朝鮮)을 연 분이 기자(箕子)인데 주(周)나라 호(虎)왕 원년 기묘(己卯. 서기전 1122년) 봄에 도망해와 나라를 세우더라.


(나) 연대 고찰


1028년이면 서기전 1305이고 164년 후면 서기전 1141년인데 이는 잘못 계산된 것이며 주(周)무왕 기묘년(己卯年)은 서기전 1122년으로 164년 앞은 서기전 1286년이며 을미년(乙未年)이 되므로 1048년이 맞다. 또 1038년이면 서기전 1295년이고 164년 후면 서기전 1131년이 되는데 마찬가지로 잘못 계산된 햇수이며 무진년(戊辰年)인 서기전 2333년으로부터 을미년인 서기전 1286년까지는 1048년이 된다.


(2) 해동춘추(海東春秋) 단씨조선기(檀氏朝鮮紀)


(가) 기록


단군은 갑자(甲子. 서기전 2457) 10월 3일에 탄강하여 무진(戊辰. 서기전 2333) 10월 3일에 즉위하여 국호를 단(檀)이라 하고 23년인 경인(庚寅. 서기전 2311)에 수도를 평양(平壤)으로 옮기고 국호를 조선(朝鮮)으로 바꾸었으며 경자(庚子. 서기전 2241) 3월 15일에 승하(昇遐)하여 93년간 재위(在位)하였고 연수(年數)는 217세였으며 을미년(乙未年. 서기전 1286)에 47대 1048년(서기전 1286년까지)에 망했다.


(나) 연대 고찰


단군(檀君)이 즉위하여 국호를 단(檀)이라 하고 23년인 경인년(庚寅年)에 수도를 평양(平壤)으로 옮기고 조선(朝鮮)이라 고쳤다 하나, 단(檀)은 박달나라 즉 배달나라를 말하는 바 한웅(桓雄)이 건국한 나라이며, 23년에 수도를 옮겼다는 것은 원래 단군왕검(檀君王儉)이 웅씨국(熊氏國)의 비왕(裨王)으로 서기전 2357년 갑자년부터 서기전 2333년까지 24년간 재위하고 조선을 건국하였는데, 이때 단국의 제후국인 웅씨국으로부터 아사달로 이동한 것을 오해하여 기록한 것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도 비슷한 기록이 있는데 즉 당(唐) 요(堯) 즉위 50년인 경인년에 평양으로 이도하였다라고 하는 바, 요임금의 즉위원년은 서기전 2383년이라는 기록도 있고 서기전 2357년이라는 기록도 있으며 무진년인 서기전 2333년이라는 기록도 있는데, 서기전 2383년을 기준으로 하면 요 즉위 50년은 서기전 2333년경이므로 단군왕검이 조선을 건국한 해와 일치하게 된다. 서기전 2357년을 요 즉위 원년으로 잡으면 25년이 서기전 2333년이 된다. 한편 경인년은 서기전 2311년이므로 이로부터 50년이전은 서기전 2361년경이 되는 바, 이는 요임금의 즉위원년과는 동떨어진 것으로 정확하지 않은 것이 된다.


(3) 조선사략(朝鮮史略) 단조기(檀朝紀)


단군은 갑자(甲子. 서기전 2457) 10월 3일에 탄강하여 무진(戊辰. 서기전 2333) 10월 3일에 즉위하고 경자(庚子. 서기전 2241) 3월 15일 승하하여 재위 93년이며 나이가 217세이다. 무진년(戊辰年)에 나라 사람들이 추대하여 임금이 되고 국호를 정하여 단(檀)이라 하다. 경인년(庚寅年. 서기전 2311년)에 평양(平壤)으로 수도를 옮기고 국호를 고쳐 조선(朝鮮)이라 하다. 역년이 1048년(47世)이다.


(4) 해동역사(海東繹史) 권제이(卷第二) 단군조선(檀君朝鮮)


(가) 기록


당요(唐堯) 25년 무진(戊辰. 서기전 2333)에 단군(檀君)이 평양(平壤)에 도읍(都邑)하고 국호(國號)를 조선(朝鮮)이라 하다. 은(殷)나라 무정(武丁) 8년 을미년(乙未年)에 구월산(九月山)으로 들어가 신(神)이 되다. 나이는 1048세이다.


(나) 연대 고찰


서기전 2333년부터 1048년째인 을미년(乙未年)은 서기전 1286년이고 은(殷) 무정(武丁) 8년(서기전 1317)까지는 1017년이 되는데, 을미년은 은 무정 38년경이 된다.


(5)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 제계고이(帝系考二) 역대기년(歷代紀年)


당요(唐堯) 25년 무진(戊辰. 서기전 2333)에 국호를 조선(朝鮮)이라 하고 수도를 평양(平壤)으로 하였으며 후에 백악(白岳)으로 옮겼고 상(商)나라 무정(武丁) 을미년(乙未年)에 아사달산(阿斯達山)으로 들어가 신(神)이 되었는데 재위 1048년(서기전 1286년까지)이며 혹은 상나라 무정 갑자년(서기전 1317년)에 예(濊)의 땅으로 옮기고 자손이 전하기를 1017년 혹은 향국(享國)이 1211년(서기전 1122년까지)이고 나이는 1908세(서기전 426년까지)라 한다.


(6) 동사강목(東史綱目)


국호를 조선(朝鮮)이라 한 즉 당(唐) 요(堯) 25년 무진년(戊辰年. 서기전 2333)이라. 상(商)나라 무정(武丁) 8년 갑자년(甲子年. 서기전 1317)에 이르러 아사달(阿斯達)에 들어가 신(神)이 되다. 재위 1017년이고 나이는 1048세(서기전 1286년까지)라.


(7) 표제음주동국사략(標題音註東國史略) 권지일(卷之一) 전조선(前朝鮮)


당(唐)나라 무진년(戊辰年. 서기전 2333)에 즉위하여 처음으로 조선(朝鮮)이라 하고 평양(平壤)을 수도로 삼았고 백악(白嶽)으로 이도(移都)하였다. 뒤에 기자(箕子)의 봉함을 피하여 장당경(藏唐京)으로 이도하였다. 전하기를 무릇 1500년이라.


(8) 동국통감외기 단군조선 (東國通鑑外紀 檀君朝鮮)


국호를 조선(朝鮮)이라 하다. 이때가 당(唐) 요(堯) 무진년(戊辰年. 서기전 2333)이었고 처음 수도는 평양(平壤)이었으며 뒤에 백악(白岳)으로 이도(移都)하였고 상(商)나라 무정(武丁) 8년 을미년(乙未年. 서기전 1286년)에 아사달산(阿斯達山)에 들어가 신(神)이 되었다.


(9) 응제시주(應製詩註)


단군(檀君)은 국호를 조선(朝鮮)이라 하고 처음 수도는 평양(平壤)이고 후에 백악(白岳)으로 이도(移都)하였으며 향년(享年)이 1048년(서기전 1286까지)이다. 뒤에 164년 기묘년(己卯年. 서기전 1122)에 기자(箕子)가 와서 봉해졌다.


3. 역년 1195년(1206년)이라는 기록


(1)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군기(檀君紀)


단검신인(檀儉神人)이 나라를 시작한 때부터 47세 1195년(서기전 1139년까지)이라.


(2) 조선역사(朝鮮歷史) 고조선(古朝鮮)


개천(開天) 125년 무진(戊辰) 10월 3일에 국인(國人)이 신인(神人)을 주상(主上)으로 모시고 태백산 아래에 국도를 정하고 國號를 단(檀. 배달)이라. 23년 경인년(庚寅年. 서기전 2311)에 왕검성으로 68년 을해년(乙亥年. 서기전 2267)에 백악 장당경으로 옮겼고 47세 1195년(서기전 1139년까지)를 지내고 통치권이 드디어 부여로 돌아간다.


(3) 한국고대사(韓國古代史)


서기전 2333부터 서기전 1128년까지 1206년이라.


4. 역년 1212년(1211년)이라는 기록


(1) 동국문헌비고


재위 1048년(서기전 1286년까지)이고 향국 1211년(서기전 1123년까지)이고 나이 1908세(서기전 426년까지임)라는 기록 중 향국 1211년을 역년으로 보면 단군조선은 서기전 2333년부터 서기전 1123년까지 존속한 나라가 된다.


(2) 동국역대총목(東國歷代總目)


단군조선(檀君朝鮮)은 수도는 평양(平壤), 후의 수도는 백악(白岳)이라. 무진(戊辰) 원년(唐 堯 25년), 갑자년(甲子年. 서기전 1317년) 상(商)나라 무정(武丁) 8년 아사달산(阿斯達山)에 들어가 신(神)이되다. 다스리기를 1212년(서기전 1122년까지)이라.


(3) 조선세가보(朝鮮世家譜) 환씨단군조선(桓氏檀君朝鮮)


시조(始祖) 개천(開天) 홍성제(弘聖帝)는 이름은 검(儉)이요, 신시천왕(神市天王) 환웅(桓雄)의 아들이라. 무진년(戊辰年. 서기전 2333. 당 요 25년) 겨울 10월 등극하고 수도는 태백산 밑에 두고 국호는 진단(震檀)이라 하였으며, 366조의 율령을 만들었다. 23년 경인년(庚寅年. 서기전 2311)에 평양(平壤)으로 수도를 옮기고 국호를 조선(朝鮮)이라 고쳤다. 재위 93년, 향년 217세라. 환씨는 무릇 47세로 역년이 1212년(서기전 1122년까지)이라.


(4) 대동사강(大東史綱) 단씨조선기(檀氏朝鮮紀)


시조 개천홍성제는 재위 93년이요, 나이는 217세라. 무진 원년인 당 요 25년에 등극하여 태백산 밑에 도읍을 정하고 국호를 진단(震檀)이라 하다. 경인 23년(서기전 2311)에 평양(平壤)으로 이도하고 국호를 조선(朝鮮)이라 고쳤다. 환씨는 무릇 47세를 지나 1212년(서기전 1122년까지)이라.


(5) 신단실기(神檀實記) 단군세기(檀君世紀)


상원 갑자(서기전 2457) 10월 3일 환검(桓儉)이 천부삼인(天符三印)을 가지고 태백산에 단목 밑에 내려오시다. 개천 125년 무진(서기전 2333) 10월 3일 나라사람들이 추대하여 임검이 되니 단군이시라. 국호를 단(檀)이라 하였으며, 117년 경인(庚寅. 서기전 2311)년에 태백(太白)에서 평양(平壤)으로 수도를 옮기고 국호를 조선(朝鮮)으로 고쳤다. 217년 경자(庚子) 3월 15일에 아사달산(阿斯達山)에 들어가 신(神)이되니 개천(開天) 217년이, 재위 93년이며 전하기를 1212년이라.


5. 역년 1908년이라는 기록


(1) 삼국유사(三國遺事)


(가) 기록


단군왕검(檀君王儉)이 아사달(阿斯達)에 수도를 세우고 나라를 열어 조선(朝鮮)이라 하였다. 당(唐) 고(高) 즉위 50년 경인년(庚寅年. 서기전 2311)에 평양성(平壤城)에 도읍을 정하고 처음으로 조선이라고 칭하였다. 도읍을 백악산아사달(白岳山阿斯達)로 옮기다. 나라를 다스린지 1500년에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즉위한 기묘년(己卯年. 서기전 1122)에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했다. 단군은 이에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겼다가 뒤에 돌아와 아사달산에 숨어 산신(山神)이 되었는데 나이는 1908세(서기전 426년까지)라.


(나) 연대 고찰


요(堯의) 원년을 2383년으로 잡으면 50년은 무진년(戊辰年)인 서기전 2333이 되고 원년을 갑자년(甲子年)인 서기전 2357로 잡으면 50년은 서기전 1307년이 되는데 이때 당 요 25년이라고 할 경우 서기전 2333 무진년이 된다. 나라 다스린지 1500년이면 서기전 2333년에서 서기전 833년경까지이나 이는 잘못 계산한 것으로 1050년의 오기이거나 1048년의 오기로 보인다.


(2) 동국문헌비고


재위 1048년, 향국 1211년, 나이 1908세라는 기록에서 나이 1908세를 단군이 다스린 역년이라고 보는 것이다.


6. 역년 2096년(2089년, 2094년, 2107년)이라는 기록


(1) 단기고사(檀奇古史)


(가) 기록


제1세 단제는 150년에 재위 93년, 왕위 57년이라. 왕위 전 67년을 합하여 217세라 기록하고 있으며, 역년은 2089년(서기전 245년까지)이라 적고 있다. 또 전단조선(前段朝鮮)은 서기전 2333부터 서기전 1113년까지이고 후단조선(後段朝鮮)은 서기전 1112(수도는 영고탑)부터 서기전 238년까지이며 기자(奇子)조선은 서기전 1285년부터 서기전 194년까지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나) 연대 고찰


단기고사가 2089년이라고 적은 것은 한단고기(桓檀古記)의 2096년과 7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데 이는 2096년의 계산착오로 보여진다.


(2) 동이한족오천백년왕통사(東夷韓族五千百年王統史)


(가) 기록


무진(서기전 2333) 10월 3일에 길림천평(吉林天坪)에 도읍하고 경인(서기전 2311년)년에 왕검성 패강평양(浿江平壤)으로 천도하여 조선(朝鮮)이라 하고 47대 2094년(서기전 240년)이라고 적으며 후단조선(後段朝鮮)은 서기전 1113년 영고탑(寧古塔)으로 천도한 때로부터이며 은(殷)의 기자(箕子)를 서후(西侯)로 봉했으며 1대로 끝났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나) 연대 고찰


2094년이라 한 것은 한단고기의 2096년과 2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데 계산착오로 보인다.


(3) 한단고기(桓檀古記)


단군왕검(檀君王儉)은 단웅(檀雄) 즉 배달나라의 마지막 제 18대 거불단한웅(居弗檀桓雄)과 웅씨왕녀(熊氏王女)의 아들로 신묘년(辛卯年. 서기전 2370) 5월 2일에 태어나고 14세 갑진년(甲辰年. 서기전 2357)에 웅씨국(熊氏國)의 비왕(裨王)이 되고, 무진(戊辰. 서기전 2333)년 제요도당(帝堯陶唐) 때에 단국(檀國)으로부터 아사달(阿斯達)의 단목(檀木) 터에 이르렀으며, 단군왕검이 비왕의 자리에 24년, 제위(帝位)에 있기를 93년, 130세였다. 단기 1048년 제 21대 소태(蘇台)단군 을미 52년(乙未年. 서기전 1286)에 우현왕(右賢王) 고등(高登)의 손자 색불루(索弗婁)가 우현왕이 되어 단제가 서우여(徐于餘)에게 자리를 물려 주고자 하니 우현왕이 자신에게 물려 달라고 요청하였으나 듣지 않자 백악신궁(白岳新宮)에서 즉위하니 단제가 옥책과 국보를 전하고 아사달에 은거 붕어하시고 단기 1908년 제 43대 단군 물리(勿理) 을묘 36년(서기전 426년)에 융안(隆安)의 사냥꾼 우화충(于和?)이 장군을 자칭하며 난을 일으키니 백민성(白民城) 욕살(褥薩) 구물(丘勿)이 어명을 가지고 군대를 일으켜 먼저 장당경(藏唐京)을 점령하여 국호를 대부(大夫餘)여로 고쳤으며, 단기 2096년 제 47대 단군 고열가(古列加) 계해 58년(서기전 238년)에 단제께서는 어질고 순하기만 하고 결단력이 없었으니 명령을 내려도 시행되지 않는 일이 많았고 여러 장수들은 용맹만을 믿고 쉽사리 난리를 피웠기 때문에 나라살림은 시행되지 않는 등 하여 3월 하늘에 제사지내던 날 오가(五加)와 의논하고서 이튿날 마침내 왕위를 버리고 입산수도하여 산신이 되니 이에 오가가 나라일을 다스리기를 6년(서기전 238년부터 서기전 232년까지)이나 계속하였다. 앞서 종실의 대해모수(大解慕材)가 임술 57년(서기전 239) 4월 8일 웅심산(熊心山)을 내려와 군대를 일으켜 몰래 수유(須臾)와 약속하고 옛 서울 백악산(白岳山)을 습격하여 점령하고 천왕랑(天王郞)이라 했다. 수유후(須臾侯) 기비(箕丕)를 권하여 번조선왕(番朝鮮王)으로 삼고 기사(己巳) 8년(해모수 8년 서기전 232년)에 무리를 이끌고 가서 옛 도읍의 오가들을 회유하여 공화정치를 철폐하였다.


(4) 민족정사(民族正史)


한웅천왕(桓雄天王)의 태자인 천손 단군왕검(檀君王儉)은 단국(檀國)의 제 2대 군왕으로서 23년만에 천자에 등극하고 국호를 조선(朝鮮)이라 고치니 개천(開天) 147년 경인(庚寅. 서기전 2311) 단군기원 23년이었다. 47대 고열가까지 역년이 2107년(서기전 227년)인 바. 제 25대 솔나제(率那帝) 39년까지 1216년(서기전 1118년까지)은 전기(前期)이고 그후 47대 고열가 58년까지(서기전 227년) 891년간은 후기제국(後期帝國. 3조선 : 단군조선, 부여조선, 기자조선)이다.


7. 기타 기록


<동사보유 단군조선(東史補遺 檀君朝鮮)>에는 당 요 25년 무진년에 평양에 도읍하고 후에 백악으로 이도하고......상나라 무정 8년에 아사달산에 입산하여 신이 되다라고 기록하고,


<동사찬요 檀君朝鮮(東史纂要 檀君朝鮮)>도 위 동사보유와 같은 기록이며,


<동사년표(東史年表)>에, 고조선단군(古朝鮮檀君), 무진 원년 당 요 25년이라 하고, 경인 23년(서기전 2311) 평양으로 이도하고 국호를 처음으로 조선이라하고, 재위 93년이라 적고 있으며,


<동사보감(東史寶鑑)>에 檀君朝鮮의 수도는 평양, 후에 백악을 수도로 삼았으며, 무진원년(서기전 2333)(당요 25년), 갑자 상나라 무정 8년에 아사달산으로 들어가 신이 되고, 다스리기 1212년이라고 적으며,


<제왕연대력(帝王年代歷) 단조기(檀朝紀)>에 갑자(서기전 2457) 10월 3일 탄강하여 무진(서기전 2333) 10월 3일 즉위하고, 경자 3월 15일 승하하니 재위 93년이요, 연수 217세이며, 무진(당요 25년. 서기전 2333)에 국호를 단(檀)이라 하고 경인(서기전 2311)에 평양으로 이도하고 국호를 조선(朝鮮)이라 바꾸었다라고,


각각 기록하고 있다.


二. 단군왕검(檀君王儉)의 연수


1. 해동춘추


갑자(서기전 2457) 10월 3일 탄강하고 무진(서기전 2333) 10월 3일 즉위하여 경자(서기전 2241) 3월 15일 승하하니 재위 93년 연수 217세라.


2. 조선사략(단조기)과 제왕연대력


갑자(서기전 2457) 10월 3일 탄강하고 무진(서기전 2333) 10월 3일 즉위하여 경자(서기전 2241) 3월 15일 승하하니 재위 93년 나이가 217세라.


3. 조선세가보(환씨단군조선)


무진(서기전 2333) 겨울 10월에 등극하여 재위 93년 향년 217세라.


4. 대동사강(단씨조선기)


재위 93년, 나이 217세라.


5. 신단실기(단군세기)


상원 갑자(서기전 2457) 10월 3일 한검이...개천 125년 무진(서기전 2333) 10월 3일에 추대받아 단군이라 하고 117년 경인(서기전 2311), 217년 경자(서기전 2241) 3월 15일 승하하시다.


6. 민족정사


단국의 제 2대 군왕으로 23년만에 천자에 등극하고 국호를 조선이라하니 개천 147년 경인(서기전 2311)년 단군기원 23년에......


7. 한단고기(단군세기)


제 18대 거불단한웅(단웅)의 아들로 신묘년(서기전 2370) 5월 2일 태어나고 14세 되는 갑진(서기전 2357)에 웅씨국의 비왕이 되고 무진년(서기전 2333) 제요도당 때 아사달로 오시다. 비왕의 자리에 24년, 제위에 있기를 93년, 130세였다.


三. 단군조선의 역년과 단군왕검의 연수에 대한 종합 고찰


1. 단군조선(檀君朝鮮)의 역년


(1) 국호로 보면 1908년


위에서 적은 각 기록을 종합하여 판단하면, 한단고기의 기록이 가장 정확한 것이 된다. 조선의 국호는 서기전 2333 무진년부터 제 45대 단군 구물이 반란군 우화충의 난을 멸하고 국호를 대부여로 바꾼 때인 425년의 전인 서기전 426년까지 존속하였으니 1908년이 된다. 그리하여 삼국유사와 동국문헌비고의 기록이 이에 부합된다.


(2) 제위 계승으로 보면 2096년


서기전 2333부터 서기전 238년 47대 고열가단군이 오가에게 나라를 맡기고 아사달산에 입산수도하러 가기까지 2096년이 되는데 비록 제 45대 구물단군이 국호를 대부여로 바꾸었다라고 하더라도 어명을 받고 반란을 진압하고 추대되어 단군에 즉위하였으므로 단군조선(檀君朝鮮)을 계승한 것으로 보아 2096년으로 본 것이다. 단기고사의 2089년(또는 2096년), 동이한족 오천백년왕통사의 2094년, 민족정사의 2107년은 특히 단군왕검(檀君王儉)의 조선 개국에 대한 사실과 연수에 대한 기록이 한단고기보다 자세하지 못하여 역년을 잘못 계산한 것으로 보인다.


(3) 1048년, 1195년, 1212년에 대한 고찰


동사집략의 1017년은 상나라 무정 8년 갑자년에 맞춘 것으로 다른 기록은 을미년(서기전 1286)이라고 하였으니 맞지 않으며, 1028년 또는 1038년은 1048년을 잘못 계산한 것이거나 오기이고, 1048년은 서기전 1286년 제 22대 색불루단군이 제 21대 소태단군으로부터으로 선양받은 것을 기자동래설에 맞추어 대가 끊어진 것으로 보아 버린 것이므로 맞지 않으며, 1195년, 1211년 또는 1212년은 기자동래설에 맞춘 것으로 서기전 1286년부터 서기전 1122년까지 164년 동안의 공벽을 타당성있게 설명하지 못하고, 삼국유사의 어국 1500년은 1050년(정확하게는 1048년)의 오기이거나 잘못된 계산으로 인한 것으로 보인다.


2. 단군왕검(檀君王儉)의 연수


(1) 130세


한단고기의 기록이 가장 자세하고 정확한 것으로 단군왕검(檀君王儉)은 서기전 2370년에 태어나고 14때 갑진년 서기전 2357년에 웅씨국의 비왕이 되어 24년간 섭정하였고 무진년 서기전 2333년에 아사달에서 38세대 조선을 개국하고 제위는 93년이고 서기전 2241년 경자년 3월 15일 130세로 승하한 것이 된다.


(2) 117세에 대한 고찰


조선세가보에 서기전 2333 무진년에 즉위하여 재위 93년 향년 117세라고 하였는데 그러면 탄생은 단기전 24년으로 서기전 2357년이 되나, 이때는 웅씨국의 비왕으로 있던 때이다.


(3) 217세에 대한 고찰


경자년인 서기전 2241년에서 217년을 계산하면 서기전 2457년 갑자년이 되는 바, 이때는 배달나라 제후국인 단웅국의 제 4대(연제 신농국의 12대) 태제 3년이 되는데 갑자년 10월 3일로 맞춘 것이고 태제를 동이한족오천백년왕통사등에서는 한인이라 하고 아들 제 5대 홍제를 한웅으로 보고 그 아들을 한검 즉 단군왕검(檀君王儉)으로 본 것이 되나, 한인의 한국이 존재하였고 한웅의 배달나라가 1565년간 존속하였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므로 한인, 한웅, 단군왕검을 아버지 아들 손자의 3대로 적은 것은 잘못된 것이고 그러므로 개천일은 서기전 2457년 갑자년이 아니며 실은 서기전 3897년 10월 3일 한웅이 한국으로부터 나와 태백산으로 와서 신시를 열고 배달나라를 연 날이 되며, 따라서 217세는 단웅국의 태제, 홍제의 연수를 합하여 계산한 것으로 맞지 아니한 것이다. 또 단군왕검은 24년간 단웅국의 홍제의 비왕이었지 아들이 아니며 배달나라 마지막 제 18대 거불단한웅의 아들이었다.


3. 개천 역년에 관한 자료 소개


단군왕검 사당인 경남 밀양의 영남루에 있는 천진궁(天眞宮)의 현판에는 조선시대 서기 1717년 정유년(丁酉年)이 개천 4414년이라고 기록하였는데 서기 1717에서 4414를 계산하면 서기전 2697년 갑자년이 되는데, 이는 배달나라 제 14대 자오지한웅(치우천왕)이 염제신농국(炎帝神農國)을 평정하고 제괴(帝魁)를 단웅국(檀熊國)으로 봉한 때이다. 그러나 서기1957년 정유년에 개천4414년이라고 위 현판을 새긴 것이라면서기전2457년이 개천일이 되는데, 이해는 곧 갑자년으로서서기전2333년보다 124년 앞선 연대로서 단웅국의 태제(泰帝) 때가 된다. 이는 대종교에서 말하는 개천일이다. 즉 단군왕검의할아버지 한인(桓因)이 개천을 하고 그 아들은 한웅(桓雄)이며, 그 손자가 단군왕검이 된다. 이는 배달나라와 옛 한국(桓國)을 배제하는 것이 되어타당하지 못하다.


4. 수도 고찰


많은 기록이 무진(서기전 2333)년에 즉위하고 나라를 단(檀) 또는 진단(震檀)이라 하고 23년 경인(서기전 2311)년에 평양으로 수도를 옮기고 국호를 조선으로 고쳤다라고 하나, 이는 서기전 2357년부터 웅씨국의 비왕으로 24년간 재위하다가 요임금의 침입으로 배달나라 웅씨국인 단웅국에서 아사달로 이동하여 다시 통일하여 서기전 2333 무진년 10월 3일에 조선을 개국한 것을 잘못 기록한 것으로 보이며, 수도는 서기전 1285년 백악산아사달에 제 22대 색불루단군이 자리잡았고 서기전 425년에 제 45대 구물단군이 장당경에 자리잡았던 것을 한단고기에서 기록하고 있는데 삼국유사의 기록도 이에 부합된다. 그래서 아사달시대는 1048년간으로 서기전 2333년부터 서기전 1286년까지이고, 백악산아사달시대는 860년간으로 서기전 1285년부터 서기전 426년까지이며 합 1908년이 되고, 장당경시대(국호는 대부여)는 188년간으로 서기전 425년부터 서기전 238년까지인데 총합 2096년간이 된다.


四. 결어


이상을 종합하여 판단하면, 물론 세세한 부분에 오기가 있을 수 있으나 한단고기의 기록은 골격이 아주 정확한 것으로 생각이 된다. 단군왕검(檀君王儉)이전의 역사가 어느정도 정확히 기록되어 있고, 중국사료에서 나타나는 치우와 황제헌원의 탁록지전이나, 태호복희, 염제신농, 소전의 유웅국, 공손씨, 소호금천, 제곡고양, 제곡고신, 요임금, 순임금, 우임금 등에 대한 기록을 검토하건대, 한단고기의 기록이 사실에 가깝다고 또한 판단된다. 결론적으로 아래와 같이 적어 본다.


옛날에 한국이 있었다(삼국유사 원본과 일치). 한인천제가 다스렸으며, 한국말기에 한웅이 풍백 우사 운사와 오가와 무리 3000을 이끌고 태백산으로 가서 신시를 열고 배달나라를 열어 개천하였다. 이때가 서기전 3897년 갑자 10월 3일이다. 개천 1565년 서기전 2333 무진년에 단군왕검(서기전 2370년 탄생)이 요임금의 기습으로 24년간 비왕으로 있던 웅씨국의 왕성을 점령당하여 무리 800을 이끌고 아사달로 가서 38세때 조선을 개국하였고 서기전 2241년 경자 3월 15일 승하하니 연수는 130세였다. 단기 1048년인 서기전 1286년에 우현왕 색불루가 백악산아사달에서 제 22대 단군으로 즉위하여 소태단군으로부터 선양받았고 단기 1908년인 서기전 426년에 구물이 장당경에서 추대받아 제 45대 단군이 되어 국호를 대부여로 고쳤으며 단기 2096년이 되는 서기전 238년에 제 47대 고열가단군이 나라를 오가에게 맡기고 입산수도하러 갔다. 서기전 239년 임술년 4월 8일에 해모수가 기병하여 북부여의 시조가 되었으며 서기전 232년에 단군조선의 오가연정을 폐지하였고 서기전 86년에 동명왕(東明王) 고두막한(高豆莫汗)이 북부여를 이었고 서기전 58년에 고주몽이 북부여를 이어 서기전 37년에 고구려가 되었으며, 고구려를 대진국(大震國)이 계승하였다. 단군조선(檀君朝鮮)의 삼한(三韓)의 유민들이 한반도로 대거 이동하여 서기전 238년경이후 한반도 삼한이 성립되었고 한반도의 삼한을 이어 서기전 57년에 신라, 서기전 18년에 백제, 서기 42년에 가야가 건국되었다. 이후 고려, 조선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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