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시내를 거꾸로 흐르게 하다
馬湘(마상)은 자가 自然(자연)이며, 당나라 때 항주 鹽官(염관)사람이다. 윗대 祖上(조상)들은 모두 縣(현)단위 관청에서 말단 관리생활을 하였다. 마상은 어려서 부터 經典(경전)과 歷史(역사)를 좋아하였고, 詩文(시문)을 깊이 연구하였다. 나아가서 도술을 사모하여 스승을 찾기 위해 일찍이 천하를 두루 돌아 다녔다. 그 후 고향인 강남으로 돌아 왔으나 틈만 나면 다시 사방으로 유람하곤 하였다.
어느 날 하루 마자연은 湖州(호주)에 갔다. 어느 주점에서 곤드레만드레 크게 취한 후 잡계라는 하천가를 따라 강 가운데로 걸어 들어가다 잘못하여 강물 속으로 빠졌다. 강물에 빠진지 하루가 지나서 강물 속에서 나왔는데 옷에는 물방울 하나 묻어 있지 않았다.
이때 마자연은 강물 위에 앉아 있었는데 몸이 물위에 떠있었다. 입으로는 혼자 말을 중얼거린다. "조금 전에 막 楚覇王(초패왕) 項羽(항우)를 만났는데 나와 마주하여 술을 마셨다. 그가 술이 크게 취하였을 때 내가 돌아 나왔다" 그곳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담장을 두른 듯이 마자연을 둘러싸고 이 말을 들었다. 이때 마자연의 입에서는 술 냄새가 풍겼는데 보기에는 그가 마치 미치광이와 같았다.
길 가던 행인들도 모여들어 구경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다. 마자연은 갑자기 주먹을 콧구멍 안으로 집어넣어 통과시킨 후 다시 주먹을 콧구멍으로부터 빼내었는데 콧구멍이 이전처럼 회복된다.
그가 시냇물을 가리키자 흐르는 시냇물이 방향을 바꾸는데 시냇물이 한참동안 거꾸로 흐른다. 또 시냇가에 서있는 버드나무를 가리키자, 버드나무 가지가 바람도 없는데 바람에 날리듯이 시냇가로 움직인다. 강위에 있는 다리를 가리키자 다리 중간이 끊어졌다가 순식간에 다시 합쳐진다.
상주에 머물면서 도술 솜씨를 보이다
마자연은 나중에 常州(상주)에 와서 유람했다. 이때 당시 宰相(재상)인 馬植(마식)이 좌천되어 상주자사 직을 맡고 있었다. 마식은 마자연의 이름을 평소에 널리 들은바 있어 만나기 위해 마자연을 초청했다.
서로 만나 인사를 끝낸 후 마식은 마자연의 행동거지가 범상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보고 몹시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이 미천한 사람이 다행스럽게도 道兄(도형)과 성씨가 같습니다. 만약 물리치지 않으신다면 형제의 교분을 맺고 싶습니다. 그리고 선생을 따라 도술을 배우고 싶은데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에 마자연은 성씨가 같고 다르고를 따지지 말고 우리 사이에 서로 알고 지내면 되었지 형제의 인연을 맺을 것 까지는 없다고 한다. 상주자사 마식은 비록 마자연과 형제의 인연을 맺지는 않았으나 마자연을 높이 존경하게 되어 군 소재 客館(객관)에 머무르도록 선처했다.
마자연이 군 소재 객관에 머물고 있을 때, 늘 식사를 마친 후에는 같이 식사한 사람들을 위해 한가지 씩 도술 솜씨를 보이곤 했다.
도술로 순식간에 오이가 자라게 하다
어느 날 상주자사 馬植(마식)이 군청에 찾아온 손님들을 잘 대접하고 宴會(연회)를 막 마쳤다.
이때 손님 중에서 어떤 사람이 馬自然(마자연)에게 도술 솜씨를 좀 보여달라고 한다. 이에 마자연은 식탁위에 있는 도자기를 손에 들고 그 속에 진흙을 가득 담더니 즉석에서 오이씨를 심었다. 잠시 후에 오이 덩굴이 무성히 올라오는데 그 자리에서 꽃이 피고 오이가 열린다. 마자연은 그 오이를 따서 손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즉석에서 오이를 맛 본 사람들은 그 단 맛이 평상시 먹던 오이 맛과는 같지 않다며 칭찬이 자자하다.
어느 때는 마자연이 몸속 여기저기에서 동전을 끄집어냈는데, 끄집어 낸 동전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그 동전을 땅위에 던져 놓았을 때 보니 그것들은 모두 靑銅錢(청동전)이다. 그 돈들을 모두 우물 속에 던져 넣어도 물방울조차 튀지 않는다.
우물 속을 향해 "나오너라"라고 외치면 우물 속에서 동전이 하나, 하나씩 날아 올라온다.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이 그 돈을 주우려고 하면 순식간에 이 동전들은 사라지고 만다.
어느 날 하루 자사 마식이 마자연에게 "常州城(상주성)에는 쥐가 너무 많이 번식하여 문제가 많습니다. 이들을 잡아 없애지 않으면 쫓아낼 방법을 찾아야겠는데, 어디 좋은 방법이 없습니까?"한다.
이에 마자연은 "그 쥐들은 쫓아내는 것이 좋겠습니다"한다.
그리고 나서 마자연은 符籍(부적) 하나를 그리더니 관청 남쪽 벽에 붙이도록 했다.
쥐 떼들을 모아 성 밖으로 내쫓다
동시에 젓가락으로 큰 쟁반을 두드리고 급한 듯이 크게 소리를 지르면서 쥐들이 쥐구멍에서 나오도록 유도한다. 잠시 후 쥐 떼들이 무리를 이루어 모여드는데 모두 부적이 붙어 있는 관청 남쪽 벽으로 모여들어 엎드리는 시늉을 하면서 꼼짝도 하지도 않는다.
이때 마자연은 곧 큰 소리로 "쥐들아! 쥐들아!"하면서 두 번 외친다. 그러자 바로 쥐들 중 가장 큰 쥐 한마리가 계단 앞으로 나선다.
마자연은 그 쥐에게 "너희들은 본래 털이 자라는 작은 동물이다. 너희들이 사람들의 곡식을 훔쳐 먹는 것은 그리 이상할 것은 없다. 그것은 하늘의 뜻인 바로 天意(천의)이다. 그런데 너희들은 어째서 담장을 뚫고 집에 구멍을 내어 晝夜(주야)로 소란을 피우느냐? 그래서 이곳 자사 어른을 불편하게 하였다. 나는 너희들에게 慈悲(자비)와 연민이 있어서 너희들 하나, 하나를 죽여 없애지는 않겠다. 그러니 너희들은 응당 신속히 이곳을 떠나거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들은 모두 滅族(멸족)의 災殃(재앙)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한다.
우두머리인 그 큰 쥐는 다 듣고 난 후 몸을 돌려 무리 속으로 돌아간다. 이때 다른 쥐들은 마자연이 있는 곳으로 와서 모두 머리 숙여 謝罪(사죄)하는 모습을 한다.
그곳에 있는 모든 쥐 떼들은 모여 다시 대열을 만든다. 우두머리 쥐가 앞에 서고, 나머지 쥐 떼들이 뒤를 따르는데 그 수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모두가 성문 밖으로 옮겨갔다. 이때부터 상주 성 내에는 한동안 쥐로 인해 일어나는 각종 憂患(우환)이 사라졌다고 한다.
타인의 가벼운 허물은 마음에 두지 말아야
馬自然(마자연)은 나중에 남쪽으로 내려가 월주 지방을 둘러보았다. 이때 동행한 사람은 무주 영강현 牧馬巖(목마암) 도사 王知微(왕지미)와 그의 제자 왕연수였다. 그들이 洞巖禪院(동암선원)을 지날 때 선원에서는 삼백 명의 스님들이 막 식사를 하고 있었다. 스님들이 그들을 식사공양에 초대한다.
마자연은 이때 혼자 다리를 쭉 펴서 포개고 앉아 있는데 보기에도 그 모습이 몹시 방자하게 보였다. 그리고 인사조차 하는 둥 마는 둥 한다. 이것이 못마땅해서인지 스님 한 사람이 밥 한 그릇만 달랑 가져와 마자연 앞에 먹으라는 듯이 내려놓고 간다.
마자연 자신은 밥을 먹지 않고, 같이 온 왕지미와 왕연수에게 서둘러 밥을 먹고 빨리 떠나자고 재촉한다. 선원의 스님들이 아직 식사를 다 마치기도 전에 마자연 등은 선원을 떠났다. 마자연은 큰길에 나와서도 절을 벗어나 빨리 멀리까지 가자고 한다.
이 고을 남쪽 끝에 있는 어느 여관에 도착했을 때는 선원으로부터 약 칠십여 리 길을 왔다. 그들은 여관에 投宿(투숙)했다. 그날, 한밤중에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여관주인에게 "이곳에 도사들이 머물고 있습니까?" 묻는다.
여관주인은 흔쾌히 "이 여관에는 도사 세 분이 머물러 계십니다"하고 대답한다. 밖에 있는 사람은 몹시 기뻐하면서 여관주인에게 간청하듯이 "집안으로 들어가서 그 도사들을 한 번 만나볼 수 있겠습니까?"한다.
밖에 있던 사람들이 문안으로 들어오는데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의 스님이다. 그 스님들은 마자연 등 도사 세 사람에게 合掌(합장)하고 절을 올리면서 애걸하다시피 간청한다.
삼백 명의 스님들이 그 자리에서 꼼짝도 못하다
"선원의 스님들이 眼目(면목)이 없어 세 분 도사님들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어제 세 분 도사님들이 저희의 작은 사찰에 降臨(강림)하였을 때 받들어 환영하여야 하는데도 몰라보고 실수를 했습니다. 지금 저희 동암선원의 삼백 명 스님들은 모두 식사하던 그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일 수 없어 꼼짝도 못하고 아직도 그대로 앉아 있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그 당시 그곳에 있지 않았으므로 이곳으로 달려와 도움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간절히 청하오니 도사님들께서는 뭇 스님들을 너그러이 容恕(용서)하시고, 또 그들이 움직일 수 있도록 놓아 주십시요 !"한다.
마자연은 오로지 침상에 누워 있을 뿐 조금도 관여할 눈치가 없다. 왕지미, 왕연수는 옆에 서서 웃고 있었다. 스님 두 사람은 계속해서 도움을 청하면서 애걸복걸한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 마자연은 "이 다음부터 다른 사람의 가벼운 傲慢(오만)함에 대해 마음에 두어서는 안 된다. 너희 두 명은 되돌아가도 좋다. 사찰에 도착했을 때쯤이면 스님들이 모두 식사하던 자리에서 내려와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한다.
스님 두 사람이 사찰로 돌아왔을 때 과연 스님 삼백 명 모두가 평상시처럼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었다.
마자연 등은 그 다음날도 남쪽을 향해 유람하고 있었다. 이때 시절은 바야흐로 따뜻한 봄날이었다. 길가 밭에는 농가에서 심은 배추가 아주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마자연은 그 배추밭 주인에게 다가가서 배추를 조금 얻을 수 있는지 물어본다. 배추밭 주인은 인심 사납게 거절하면서 듣기에도 거북한 말을 툭 던진다.
종이위에 그려진 백로가 날아오르다
馬自然(마자연)은 왕연수에게 종이와 붓을 가져오라고 한다. 옆에서 이 말을 들은 왕지미는 "배추를 좀 달라고 했으나 주지 않은 것과 사람을 불쾌하게 만드는 기분 나쁜 말 몇 마디 한 것은 본디 시골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자질구레한 일입니다. 시골사람들과 是非(시비)를 따져 문제를 일으킬 필요가 있겠습니까? 하물며 우리들은 도를 닦는 사람인데 그만 하시는 것이 어떻습니까?"한다.
마자연은 웃으면서 "나는 시비를 가리자는 것이 아니다. 그 인정머리 없는 농부와 장난을 좀 하여 그저 한 바탕 웃고 싶을 뿐이다"고 한다. 왕연수가 종이와 붓을 준비하자 마자연은 곧 종이위에다 白鷺(백로) 한 마리를 그린다. 완성된 그 그림위에다 한입 물을 물고 내뿜자 그림속의 그 백로가 그 자리에서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곧장 날아 채소밭으로 내려앉아 배추 잎을 쪼아 먹기 시작한다.
그 광경을 본 채소밭 주인이 달려 나와서 백로를 쫒아버린다. 주인을 피해 도망간 백로는 주인이 채소밭을 떠나자 또 다시 채소밭으로 날아와서 배추를 쪼아 먹는데 주인은 또 쫒아낸다. 이렇게 쫒고 쫒기는 것이 몇 차례 反復(반복)되자 배추밭의 피해가 굉장하다.
그림속의 강아지가 뛰어나와 백로를 뒤 쫒다
마자연은 또다시 종이위에다 작은 개를 그린다. 그 강아지가 그림 속에서 뛰어나와 바로 채소밭으로 들어가 백로를 뒤 쫒는다. 백로가 앞에서 달아나고 강아지가 그 뒤를 쫒고 하여 채소밭은 쫒고 쫒기는 角逐場(각축장)이 되었다. 순식간에 멀쩡하던 채소밭이 엉망진창이 된 것이다.
채소밭 주인은 도사들이 옆에서 이 광경을 보면서 웃고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곧 이러한 일이 조금 전에 배추를 조금 달라고 하는 도사들의 요청을 거절하여 생긴 일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도사들이 또다시 다른 法術법술을 펼칠까 걱정이 되어 서둘러서 도사들에게 다가가 "몰라보고 無禮(무례)를 범하였사오니 한 번만 容恕(용서)해 주십시오!"한다.
마자연은 웃으면서 "우리들은 원래 당신에게 채소를 얻을 생각이 없었다. 다만 오늘 흥미가 좀 일어나 당신과 한번 웃자고 해본 일이니 너무 염려하지 마시오!"한다. 마자연은 말을 마치고 곧 백로와 강아지를 보면서 "돌아오너라" 하며 큰 소리로 명령한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순식간에 백로와 강아지가 마자연의 품속으로 되돌아온다. 그러고 나서 다시 배추밭을 돌아보니 이전 말짱하던 옛날 모습을 되찾았으며, 조금도 損失손실을 입지 않았다.
대들보에 매달려 잠을 자다
이 일이 있고난 후 그들은 계속해서 남쪽 霍洞山(곽동산)으로 유람을 떠났다. 장계현 경계로 들어갔다. 그날 해가 서서히 저물자 마자연 등은 여관에 投宿(투숙)하였다. 여관방 숫자는 적고 나그네는 많아 편히 쉴 방도가 없었다.
여관주인이 웃으면서 "빈방이 없습니다. 도사님들께서 벽 위에서 주무실 수 있다면 가히 하룻밤을 묵을 수 있습니다"한다. 이때 해가 막 서산으로 지려고 하므로 일행인 왕지미와 왕연수는 잠자리 구하는 것이 急先務(급선무)라 여기고 있는데, 마자연은 그들의 속마음을 알고 있기나 하는 듯이 "당신들 두 사람은 보통객실로 가서 비좁더라도 잠을 자도록 하시오!"하고 말을 마친 후 몸을 휙 한번 날리니 이미 대들보위에 올라가 있다. 대들보에 다리 하나를 걸고 거꾸로 매달려서 잠을 잔다.
여관주인이 밤중에 일어나서 등불을 들고 밖으로 나오다가 마자연이 대들보에 매달려 자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다. 이에 마자연은 "이미 대들보위에서도 잘 수 있는데, 벽 위에서 자는 것이 또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한다. 그리고 곧 벽 위에 붙어서 잠을 자는데 상당한 시간이 지나도 벽에서 내려오지 않고 그대로 잠을 자고 있다.
소나무를 보고 곧 화석이 될 것이다
여관주인은 벽 위에 붙어서 잠을 자고 있는 馬自然(마자연)에게 서둘러 절을 하면서 謝罪(사죄)한다. 그리고 마자연 등 도사 일행을 그 여관 중 가장 깨끗하고 조용한 방으로 초청해서 편안히 쉬도록 했다.
날이 밝아 도사들이 떠나려 하자 여관주인이 더 머물라고 하면서 붙잡는다. 이를 물리치고 문을 나서자마자 눈앞에서 마자연은 蹤迹(종적)이 묘연히 사라진다. 왕지미와 왕연수는 여관을 나와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길을 걸어가면서 한편으로 마자연의 行方(행방)을 찾으면서 몇 리길을 갔다. 홀연히 앞에서 마자연이 나타나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다.
합류한 세 사람은 霍洞山(곽동산)에서 영강현으로 되돌아 왔다. 이곳에 있는 東天寶觀(동천보관)에서 쉬게 되었다. 이 도관 경내에는 큰 枯松(고송) 한그루가 있었다. 마자연은 손가락으로 소나무를 가르치면서 "이 소나무는 이미 수명이 3,000년을 넘었다. 멀지 않아 이 나무가 化石(화석)으로 변할 것이다"한다. 그 후에 그 늙은 소나무는 과연 화석이 되었다. 나중에 큰 바람을 동반한 벼락을 맞아 꺼꾸러지면서 몇 토막으로 截斷(절단)되었다.
죽장으로 때려서 병을 낫게 하다
마자연은 가끔 환자들의 병을 치료해 준 적이 있었다. 환자가 오면 그는 약물을 쓰지 않고 도리어 竹杖(죽장)으로 환자들을 때려서 병을 치료했다. 배속이나 몸 위 등 기타 부위의 여러 가지 병들에 대해서 그는 죽장 끝을 아픈 곳에 대었다. 그 후 입으로 죽장의 다른 쪽 끝을 훅 불면 천둥소리 같은 울림이 나오면서 병이 즉시 다 나았다.
또 허리나 다리가 아파서 지팡이를 짚고 몸을 지탱하는 몸이 굽은 이런 환자들에 대해서는 죽장으로 아픈 곳을 먼저 후려친다. 뒤따라 환자가 짚고 있는 지팡이를 버리라고 한다. 그러면 환자는 즉시 손발을 쭉 펴면서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었다.
치료받은 환자들이 늘 돈이나 비단을 가져왔는데 마자연은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사실 부득이하게 거절할 수 없을 때는 받아서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救濟(구제)하는데 사용하였다.
고향에 돌아와 3일간 술만 마시다가 죽다
천하를 유람하던 마자연은 나중에 형님이 사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마침 형님은 出他(출타)하고 없는데 형수에게 갑자기 재산을 나누어 分家(분가)하자고 한다. 나에게는 동쪽의 밭떼기 조금만 주고 나머지는 모두 형님소유로 할 것을 제안했다.
이 말을 들은 형수는 형님도 안 계시는데 무슨 분가냐 하면서 화를 낸다. 이때 마자연은 형님 댁에서 삼일 간 머물렀는데, 밥은 먹지 않고 삼일 내내 술만 마셨다. 형님이 돌아오지 않았는데 삼일 째 밤에 갑자기 죽었다.
그 다음날 형님이 돌아왔다. 그 사이에 있었던 일의 경과를 듣고 몹시 비통해 하면서 "내 아우는 여러 해 동안 도를 공부했다. 동생이 집에 돌아온 것은 나와 분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에게 동생이 세상을 떠난다는 것을 미리 알려 주기위해서다. 형인 나로 하여금 동생에 대한 정을 끊게 하기위한 것이다"한다. 형은 관을 마련하고 장례절차에 따라 장례를 치렀다.
그날 밤, 관속에서 쿵쿵거리는 큰 소리가 들려 집안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마자연의 생전 소원대로 동쪽 밭떼기에 무덤을 마련했다. 이때가 당나라 宣宗(선종) 大中(대중)10년(856)이다. 다음해인 857년 동천지방관이 朝廷(조정)에 "검남 재동현 도사 마자연이 대낮에 昇天(승천)했다"고 보고했다. 승천할 때 동천지방 사람들에게 "나는 이제 고향인 염관으로 가겠다"고 하였다.
조정에서는 "마자연이 승천한 일"에 대해 석연찮은 것이 있어 관원을 파견해 조사했다. 고향에서는 이미 지난해에 죽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무덤을 파서 관 뚜껑을 열어 확인해 보았는데, 관속에는 죽장 하나만 달랑 놓여있고 아무것도 없었다. 尸解仙(시해선)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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