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의 구주(九州)와 단군조선 요중(遼中) 12성(城)으로 본 단군조선 서남쪽 경계]
요임금은 서기전2357년 유웅국의 제지(帝摯)를 멸하고 수도를 평양(平陽)에 두어 "당(唐)"을 세우고 제왕이라 하였으며, 마음대로 구주를 나누었다.
구주는 연주(연州), 기주(冀州), 옹주(雍州), 청주(靑州), 예주, 량주, 서주(徐州), 형주, 양주(楊州)이다.
나중에 단군조선과 접하는 북쪽과 동쪽에 해당하는 주로는 연주, 기주, 옹주, 청주, 서주가 된다.
연주는 하북지역 남부와 산동지역의 북서부, 기주는 평양의 북쪽으로 태원 일대, 옹주는 서안 일대, 청주는 산동지역의 서부, 서주(徐州)는 산동지역 중남부와 회수지역에 해당한다.
서기전2333년에 조선을 건국한 단군왕검은 서기전2311년에 산동반도의 남쪽 해안가에 있는 청도(靑島)의 낭야성(琅耶城)을 개축하여 가한성이라 불렀고, 서기전2301년에 요중 12성을 건립하였다. 요(遼)라는 글자의 뜻은 멀다라는 것이며, 단군왕검이 송화강아사달에 수도를 잡았으므로 지금의 북경 부근에 있는 영정하는 먼 곳이 된다.
이보다 먼저 서기전2324년 단군왕검은 순의 아버지 유호씨에게 환부, 권사 100여명과 군사를 이끌고 가서 요를 깨우치도록 하였는데, 이에 요는 굴복하여 유호씨를 하빈(황하 물가)에 거처를 마련해 주었으며, 요임금은 자칭 제왕에서 단군조선의 정식 천자(天子)로 되었다. 이때의 하빈은아마도수도가 되는 평양의 동쪽지역에 해당하는 황하를 가리키며, 고대중국 하나라 기록에서 감(甘)이라는 곳이 될것이다. 감은 유호씨가 하나라 계왕과 전쟁을 하던 최후근거지였다.
*하빈 또는 감은 평양 남쪽에 흐르는 황하 부근에 있는 땅으로서, 지금의 낙양, 개봉, 안양 부근에 있었던 것이아닌가 한다.
*실제로 황하 남쪽 하남 지역에 의양(宜陽)이라는 지역이 옛 감(甘)이었다 한다. 즉 유호씨가 요임금 나라 땅 깊숙이 들어가 감시한 것이 된다.
*지금의 심양은 단군조선의 말기 수도인 장당경인데, 이 장당경(藏唐京)이라는 말의 장당이라는 글자는 요임금의 당나라와 관련이 있는 글자인데, 아마도 단군조선이 요임금을 정벌한 후 안치한 곳이 아닌가 한다. 즉 요임금을 평양에 두면서 천자로서 대신 다스리게 하고, 장당이라는 곳에 요를 봉하여 안치함으로써 단군조선의 제후임을 명백히 하고 정기적으로 불러 들여 국정을 보고토록 한 것은 아닐까? 순임금을 감독하던 관청으로는 서기전2267년경 도산회의 이후에 지금의 산동반도 남쪽의 청도(靑島)인 낭야성(琅耶城=可汗城)에 감우(監虞)를 두었다.
서기전2314년에 요임금은 순을 등용하였고, 서기전2294년에 순을 섭정으로 맡겼다.
요중12성은 순이 요임금에게 등용된 후에 건립된 것이다.
서기전2301년에 세워진 요중12성의 위치를 보면, 대체적으로 요수가 되는 영정하의 동쪽이며, 난하의 서쪽에 해당한다.
요중12성은, 여성(黎城), 영지(令支), 통도(桶道), 거용, 장령, 한성(汗城), 개평(蓋平), 탕지(湯池), 갈산(碣山), 험독(險瀆), 대방(帶方), 백제(百濟)이다.
요중12성 중에서 영정하의 바로 동쪽이나 남쪽이나, 부근에 위치한 성으로는 여성, 영지, 통도, 장령, 한성 등이 된다.
여성의 위치는산동지역이나 서안부근으로 추덩되고, 영지는 북경의 서북으로 영정하 바로 건너 동쪽에, 통도는 북경 밖 60리(약24킬로미터)에, 장령은 북경 북쪽 고산지대에, 한성은 영정하 최하류 바로 동쪽에 위치한 것으로 된다.
그래서 여성을 제외하면 모두 영정하 건너 단군조선 지역에 설치된 것으로서 요임금 나라와의 경계는 영정하 남쪽이 되는 셈이다. 당시에는 국경이 선으로 구분된 것이 아니라 어느 백성이 살고 있는 지역이냐가 된다.
최소한 성(城)을 쌓으려면 그 땅이 영역이 되어야만 한다. 그래서 요중12성이 있던 지역은 모두 단군조선의 영역에 속한 것이 된다.
요임금의 나라는 태원이남의 평양을 중심으로 북으로는 태원, 동으로는 산동 서부, 남으로는 양자강, 서로는 서안에 이르는 것이 된다. 즉 대체적으로 중원지역을 중심으로 확장된 것이 된다.
나중에 순이 요임금의 뒤를 이어 3주를 증설하는데, 유주(幽州), 영주(營州), 병주(幷州)이다. 유주는 기주와 연주 사이로 하북지역의 남부, 영주는 연주와 청주 사이로 산동지역의 서부가 된다.
서기전2267년에 있었던 도산회의에서 유주와 영주는 단군조선의 직할영역으로 편입되었다. 즉 하북, 산동이 모두 단군조선의 번한관경에 속한 것이 된다.
이리하여 요임금의 나라와 단군조선의 강역을 대략적으로 선을 그어 본다면, 서로는 서안지역, 북으로는 태원지역, 동으로는 산동 서부, 남으로는 양자강 유역이 된다. 양자강의 이남은 적이(남만)의 땅이고, 서안의 서쪽은 백이(서이, 서융)의 땅이며, 태원이북은 북이(북융, 북적)의 땅이다.
이리하여 단군조선은 기본 9봉후국이 자리잡게 되는데, 요수가 되는 영정하의 남쪽에 위치하는 제후국으로, 고죽국, 청구, 남국을 두었다. 고죽국은 지금의 북경과 천진을 중심으로 하였으며, 청구는 산동지역의 중북부, 남국은 산동지역의 중남부에 위치하였다. 이리하여 고죽국은 요순의 기주와 연주와 접하고, 청구는 연주와 청주와 접하며, 남국은 청주와 서주와 접하게 된다.
이후 서기전2247년경 이후 순임금이 다시 산동지역 남국 부근에 설치한 유주와 영주는서기전2240년에 부루단군 시대에 정벌되었고, 서기전1236년에는 남국이 강성하여청구, 구려, 몽고리의 군사와 함께 해대지역을 평정하여 태산부근에 엄(奄), 산동지역 남부에 서(徐), 그 남쪽의 회수부근에 회(淮)라는 제후국을 세웠다.
서기전1122년경 이후 주나라가 하북지역과 산동지역에 제후를 봉하면서 고죽국의 남쪽지역이 줄어들고 산동지역의 청구, 남국이 사라지게 되었고 이후 중국내륙에는 소국이 되는 8이가 되는 동이가 있게 되었는데, 남국의 뒤가 되는 남이, 엄국은 엄이, 서국은 서이, 회국은 회이, 그리고 산동반도 지역에는 개이, 래이, 양이, 우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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