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봉산 대원사( 天峰山中大原寺)
관음전제명추기(觀音殿題名追記)
관음전(觀音殿) 제명(題名)에 추기(追記)하다.
천봉산(天鳳山)가운데 대원사(大原寺)가 있는데 위치가 고요하고 형세가 가파르며
시냇가에는 바위돌들이 영롱하게 빛이 나고 나무가 울창하여 옛부터 글 읽는 선비들이
산천을 즐겨 찾았었다.
나도 젊었을 때 친구들과 같이 이곳에 머무른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으며
만약에 이 절에 들리게 되면 관음전을 살폈으므로
난리를 겪은 뒤에는 스님들도 흩어지고 절도 거의 폐사가 다 되었으므로
자주 오지 못하였는데 지나간 乙巳년에 이 곳에서 文會를 하였고 이른바 觀音殿의
屋宇가 퇴패(頹敗)하고 잡초속에 거의 매몰이 되다 싶이 하고 있었으며
지금 또 다시 와서 머무르는데 한 스님이 절을 중창(重創)하고 있는 것을 보고
식사를 하고 왔다 갔다 하다가 일을 하고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겨 바라보니
내 이름이 옛날 벽에 기록 되어 있었으니 그 때가 丙戌년이라 같이 놀던 친구들이
여섯명이니 윤경중(尹敬中)과 정경숙(鄭敬叔)형과 안시헌(安時憲)과 임덕수(林德樹)와
김기추(金紀秋)이다.
글씨는 안시헌친구가 썼으며 선명하고 뚜렸하여 잘 보이는지라 내가 한참을 서서
바라보니 서운한 마음이 감돌았다.
鄭兄은 불행하게도 적(賊)에게 죽었으며
林德樹는 진주성(晉州城)이 함락 되었을 때 죽었으며
安時憲은 병들어 폐인이 되어 병석에 누운지 오래 되었으며
그 가운데 탈이 없는자는 尹敬中과 金紀秋 그리고 나다.
아 !
이 관음전이 乙未년부터 사라져 황폐된지 벌써 15년 이나 되어 위에 양쪽 傍風이
거의 다 허물어졌으나 이름 쓴 곳만 마세(磨洗)되지 아니하여
우연히도 오늘 와 보니 폐했다 흥했다 하는 사이에 운수가 없다고 못할 것이다.
슬프다 제명(題名)은 소년때의 일이다
이기(二紀 : 一紀는 十二년임)의 사이에 세상이 크게 변했으며
이 관음전도 거의 폐하였다가 중수(重修)되고 있으니 기록되어 있는 여섯사람도
모두가 탈이 없었다면 어찌 큰 행운이 아니었겠는가 마는
두 분은 죽고 한 분은 병들어 있으니 더욱 슬픈 생각뿐이다
인생무상한 것을 슬퍼하고 친구의 불행을 느끼며
그리고 또 한이 되는 것은 내가 늙도록 성취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주 없는 내가 다행히 세상에 살아 있어 얻어 느껴 보았으니
이 또한 운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日記에 기록하여 뒤에 볼 수 있기를 ...
觀音殿題名追記
天峰山中大原寺宅幽勢阻溪石玲瓏樹木叢茂自古讀書之士喜遊焉余自少時與友棲此者非一再而若來則必於觀音殿也亂離之後僧殘寺廢不能來遊向在乙巳文會於斯而所謂觀音殿屋宇頹敗草莽埋沒今又再棲適見一僧之重創食後逍遙步及于役所望見吾名之在舊壁年則丙戌也同遊則六人也尹敬中也鄭兄敬叔也安時憲也林德樹也金紀秋也筆則安友之書也而班班可觀余良久佇不能無憾者鄭兄不幸死賊林友死於晉城之陷而安友則病廢已久其中無故者尹金及吾也嗚呼此殿自乙未消歇荒廢者已十五年上兩傍風幾盡毁壤題名之處不至磨洗而偶見於今日廢興之閒不能無數嗟乎題名少年時事也二紀之閒人世大變而此殿則幾廢而重修所書六人皆若無故豈不爲大幸也而二死一病尤所以惻然于懷也悼人世之無常感亡友之不幸而恨余至老而無所成也雖然吾之不才幸保于世而得見之則亦數存焉故錄之於日記以俟後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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