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달 높은 산을 비추고 흐르는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네.
믿음인 신 信은 도 道의 근본이요, 모든 공덕 功德의 어머니인 모체 母體가 되고,
진실로 정법 正法을 바로 믿기 어렵고, 바른 눈 정안 正眼을 갖추기 어렵네.
한 명의 도인이 출현하면 천명은 죄를 짓고 한 두명쯤은 제도 받기가 어렵도다.
법 法을 위해 집착 執着을 버린 제자들
직지사 直指寺의 제산 霽山 스님은 율행 律幸과 덕행 德行이 높아
제방 諸方에서 한결같이 큰 스님으로 존경받고 있었는데
제산 스님이 경허 선사의 법을 신봉하는 제자였다.
경허 선사가 영남 해인사 海印寺 조실 祖室로 계실 때
제산 스님이 시봉을 도맡다시피 하여 받들었다.
그런데 당시 4,오백명의 대중을 거느린 대사찰에서
경허 조실 스님의 뜻을 받들어 모시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대단히 난처한 일도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산 스님이 경허 스님을 위하여 대중들 모르게 곡차를 마련하고
안주감을 장만하기 위해 밤잠을 설치는 일이 많았으니
제산 스님이 직접 시봉을 해야 하였기 때문이다.
혹 다른 사람의 구업 口業을 막아야 하는 충정에서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시키지 않고
자정이 지난 깊은 밤에 절 밖으로 나가 닭을 구하여 안주를 만들어서 정성껏 올리는 것이 일과였으니,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대중들에게 알려져서 산중에서 무슨 변고가 일어난 줄 알았다.
몇 몇 스님들이 모여서 경허 스님과 제산 스님을 성토하는 것이 잦았다.
그 당시 해인사 주지 스님인 남전한규 南泉翰圭 스님이 이 소문을 듣고
제산 스님을 만나 절 안팎에 알려진 사실을 캐묻게 되었다.
이에 제산 스님은 태연하게
제가 경허스님을 위해 그와 같이 하였고 하고 있지요,.
하며 대담 솔직하게 실토 하였으며
남전 주지 스님은 허위 낭설이려니 하였다가 사실이라니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도 못하고
얼굴을 붉히며 나가 버렸다.
남전 주지 스님으로서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로서
평소에 도력이 높아 추앙받는 선지식 경허 조실 스님과
학덕과 율행을 겸비한 제산 스님이 아닌가 ?
며칠을 고민하던 남전 주지 스님은 경허 스님의 법력이 그렇게 높을까 ? 하면서
이번에는 아무 말 없이 경허 선사의 법문을 듣는데 열중하였다.
들을 수록 마음에 감동을 받아 얼마 뒤에는 선방 禪房에 들어가 좌선수행을 용맹정진하였다.
남전 스님 또한 신심 信心이 발 發하여
하루는 대중공양때 발우를 펴면서 제산 스님에게
스님 이 발우가 안보입니다,.
하는 격외 格外의 선문답을 하여 대중을 놀라게 하였다.
그 뿐인가 ?
그 후로는 남전 스님 역시 제산 스님 이상으로 경허 스님을 신봉하게 되어
소승배 小僧輩들의 쑥덕공론을 가라 않히기에 앞장섰다.
수행자에게 있어 신심 信心이 크면 도가 크게 깨치고 신심이 작으면 깨침도 작다고 했다.
해인사에서 어느 날
만공월면 스님을 비롯하여 남전 스님과 제산 스님 세 도반이 함께 자리하여
경허 스님의 법을 신봉해가는 정도를 말하게 되었다.
제산 스님이 말하기를 누가 뭐라 해도 경허 스님에게 곡차와 안주를 올리리다,. 하니
남전 스님은 경허스님과 같은 어른이라면 닭이 아니라 소라도 잡아 올리기를 조금도 꺼리지 않으리다,.
하고 말하니 만공 스님은 나는 경허 스님을 위해서라면
산 중에 모시고 살다가 전쟁 중에 양식이 떨어져 공양꺼리가 없다면
나의 살이라도 오려 내어 스님의 생명을 유지하게 하여 세상에 나가서 중생을 제도 하게끔 도와 드리고 싶소,.
라고 말 하는데 그 눈빛은 진실한 광채가 발하였다.
과연 법을 위해 몸을 버리는 위법망구 爲法亡軀의 실천적 선언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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