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도어록 - 신부구양경여편
神父의 성은 구양이고 이름은 경여이다.신체가 우람하고 나이가 古稀를 지났지만 정신은 호랑이 같았다. 신부는 호남형양에서 태어났고, 강서여능에서 장성했다. 북경대학을 마치고, 진예이성에서 傳道를 하다가 그것을 놓고 진의 보집진에서 신학원의 주임으로 있었다.그 때 개봉부에 곽화정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일찍이 죽음에 이르는 병을 앓고 있었는데 이에 눈을 감고 정좌를 배워서 만가지 생각을 다 놓아버리길 삼년이지나자 병이 홀연히 치료되고 무술을 아직 배우지않았으나 능히 권법을 하고 신력을 얻었다. 이에 더욱 마음을 고요히 하고 망상을 멈추자 지혜에 통하고 또한 사람의 병을 주물러서 낳게 하였다.이로 인해 開山하여 따르는 무리와 제자를 거두게 되었는데 수백명이 되었다.그러나 그 공법은 쉬우면서도 실로 어려워서 계승한 사람은 세사람에 불과 하였다.女제자를 제외하고 신부가 그중 한사람이다.대만에 온이후에 신부는 처음에는 저 중화향에서 전교을 했는데, 그때에 노적의 양의사 마덕명선생이 있었는데 현재는 관음산능운사에서 삭발하여 법호는 묘덕이다. 일찍이 고혈압으로하루종일 머리가 어지러워서 각병원의 명의들을 찿아 여러번 진단하고 치료하길몇년이 지났지만 쾌차하지않았다. 마선생이 이에 신부에게 치료를 부탁하자 신부는 쾌히 승낙하고 한손은 그 머리에 대고 한손으로는 잡지를 넘기며 보고 있었는데 태도가 유유자적 하였다.이렇게 하기를 두시간 정도 지나자 혈압이 내려가고 얼마되지 않아서 완전히 치료가 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각지에 소문이 자자 해졌다. 대져 유가의 靈明無着과 불가의 去妄歸眞과, 도가의 泯思絶慮는 다 그 극처에 도달할 수가 있는데 신부는 이 세가의 장점을 겸하여 수련한 것이 아니겠는가?나의 법은 간단해서 행하기가 쉽고 일반정좌법과는 같지않다.첫째는 자세에 구애받지않고 양손은 서로 합치거나,주먹을 쥐거나,스스로 편한 것으로 하고 가부좌,평좌등도 일정한 앉는 자세가 없다. 두 번째는 기를 운기하지않는다.호흡은 그 자연에 맡겨서 능히 虛極靜篤에 도달한즉 運氣치 않으려 해도 스스로 운기가 되는 것이다. 세 번째는 竅를 지키지않는다.이른바 생각을 한곳에 모으는 것이 이른바 守이다.하단전을 지키면 쉽게 효과를 보지만 다만 그것을 잘하지 못하면 쉽게 병에 걸린다. 머리등 다른竅등은 그 폐해가 더욱 심하다.네번째는 힘을 쓰지않는다. 마땅히 전신을 평안히 하여야지 힘을 쓴즉 효과가 없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나의법에 최고로 중요한 것은 단지 생각하지 않음이다.그러나 생각하지 않는 것을 어떻게 쉽게 할수있을까? 뜻은 말과같고, 마음은 원숭이같으므로 칼을 빼어 물을 갈라도 물은 여전히 흐르는 것과 같다.더욱이 생각하지 않을 것을 생각하면 도리어 쉽게 쉽게 생각을 내게된다.그런즉 어찌해야 할것인가? 이것은 오직 한번 깨달으면 끊기고 끊겼다 생각하면 다시오고 그러면 또 끊고, 이렇게 끊임없이 노력하면 모래가 쌓여 탑을 이루듯 공부가 진행하는 것이다. 진실로 항상 게으르지 않게 노력하면 마침내 생각을 잊고 분별을 끊을수 있을 것이다.그 망념이 어째서 일어나는가를 묻지말라. 그대는 다만 하나에 모든 마음을 두어서 어떤것도 마음에 두지 말아야 한다. 일예로 종을 두드리면 종소리가 나는데 소리에 귀기울이지 않으면 자연히 종소리가 방해롭지 않아서 일체소리에 자유로운 것 같은것이다.만에 한가지라도 자기가 평소에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해가된다는 것을 깊이 알아야 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망념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이 수십년의 고된 수행이 아니면 어찌 쉽게 도달할수 있겠는가? 동선사 공부는 눈을 아래로 내려 한점을 보는것이고, 둘째공부는 눈을 수평으로 하여 한점을 보는 것이고, 세 번째 공부는 눈을 거두어 산근을 보는것이고, 넷째 공부는 눈을 돌이켜서 니환을 보는 것이고, 다섯째공부는 눈을 안으로 하여 협척을 보는 것이고, 여섯째는 일체를 보지 않는것인데, 나의 공부는 처음부터 보지 않은 것을 사용한다. 앉았을 때 눈은 반드시 가볍게 닫고 이미 안을 보지도 밖을 주의 하지 도 않는 것이다. 정좌할때에 비록 잠이 들어도 전혀 방해가 되지 않고 그 효과는 동등하다. 혀는 윗턱에 대지도 않고, 치아를 반드시 콱 물지도 않고 다만 가볍게 입을 다물 뿐이다. 그러나 머리는 반드시 수직으로 세우되 척추부위는 처음에는 그 자연에 맡기다가 공부가 깊어지면 자연히 나무기둥처럼 세워진다. 나의법은 다른 파의 좌법과 같이 혼합하여 수련하면 않된다. 그렇지 않으면 다만 효과를 보지 못할뿐 아니라 심하면 편차가 발생한다. 나의 법은 때를 따라서 앉는 것으로 밥먹은 후에도 상관하지 않는다. 오히려 소화를 돕는다. 여름에 더울 때 낯잠을 자는 것을 좌선으로 대신해도 방해가 되지 않는다. 나의 법을 나누면 앉고 서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 서서 하는법은 앉아서 하는 법과 서로 같고 뜻으로 그것을 금하지 않는다.다만 그 스스로 움직이는 것에 맡길 뿐이다. 그 움직임은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르게 반응이 나온다. 비록 스승이 전하지 않았어도 능히 주먹으로 가격하기에 신권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이것은 엄연히 선천성의 무술이기 때문이다. 한나이 많은 제자 가 법을 읶혀서 꾸준히 연습하자 몸을 한번 날리면 몇장을 높이 오르고 그 신묘한 것은 헤아릴수 없어서 사람들이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정좌시간은 작으면 한시간을 적당한 것으로 보는데 시간이 지나치게 작으면 효과를 보기 어렵다. 정좌시간은 오래 할수록 더욱 효과가 있다. 다만 마음에 번거롭고 산란치 않게 하고 억지로 오래 앉으려 해서는 않된다. 이때는 마땅히 자리에서 내려와서 몸을 평안히 한후에 다시 앉는다. 혹은 잠깐 잠을 취한후에 다시 정좌를 하면 마음이 청명해서 그 효과가 더욱 현저 하다. 나의 손바닥은 진실로 보통사람과 다르지 않다. 아울러 특별히 열력이 있는 것을 감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병든사람의 환부에 손을 대면 매양 쉽게 효과를 본다. 그러나 사람의 병을 치료하면 쉽게 자기의 원기를 소모시킨 다. 그러므로 일부러 찿아다니면서 그것을 실험하지 않기 바란다. 정좌은 참으로 병을 치료하고 가벼운 감기정도는 한번 좌정하면 사라진다.그나머지 풍습,치질등도 모두 정좌로서 치료할수 있다. 어떤 工程師는 내가 그의 위병을 안마법을 써서 치료한후에 신체가 날로 건강해졌고, 또 일찍이 암에 걸린 사람을 내가 사십일을 안마하여 병근을 모두 제거하기도 하였다.상해에있는 어떤 상인의 어머니는 척추가 휘여서 병상에 누운지 이십년이었는데 내가 반년을 안마하여 치료하였다. 나의 친구중에 수종병에 걸린 사람이 있는데 내가 안마로서 혈액이 물이되는 것을 저지하여 점차로 그병을 치료하게 되었다. 그 외에 많은 사례들이 있지만 일일이 열거하지 못하는점 용서를 바란다.정좌할 때 땀이 비오듯 쏱아지면 더욱 열심히 정좌해야하고 그러면 더욱 쏱아지는데 모포를 준비하여 때때 닦아주어야 한다. 이것은 정좌에 응당 있는 과정이다. 이것을 병상으로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대개 땀이 모두 나오고 나서 하좌한후에는 도리어 정신이 백배는 밝아지는 것이 이증험이다. 나는 평생 정좌에 아직 마장을 만나지 않아서 환상을 본적이 없다. 나의 좌법은 온몸이 상하 할것없이 쾌적한 것이 특별이 단전 만 그런 것이 아니다.그런고로 서리가 내리고 눈이 쏱아지는 밤에도 다만 한 벌의 옷이면 족하고 추호도 걱정스런 마음이 없다.정좌할 때 때때로 청량한 바람이 불어오는데 어느곳에서 오는지 알수가없다.나의 법은 하거를 논하지 않고, 결단여부도 또한 묻지 않는다.앉았을 때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 것은 처음엔 억지로 하지만 오래하면 자연히 생각하고져 하여도 되지않는 경지에 도달한다.정좌는 수면을 대신할수 있는 것이다. 초학자는 앉는것보다 잠이 많지만 오래하면 밤새도록 잠을 자지 않아도 휴식정도가 수면 보다 더욱 뛰어나다.나는 몇 년동안 잠자지 않아써도 건강하고 수면이 오히려 쾌적하지 않다. 그러나 이경지에 이르는 것은 점차로 해야지 한번에 도달하려 해서는 안된다. 먼저 단전에서 발동하여 나아가서 기경팔맥을 순식간에 모두 통한다. 정좌을 처음할때는 살이 움직이거나 가렵거나 하는 증상이 있다. 양물이 많은 시간 일어나지 않으면 수축하여 어린아이 의 고추처럼 되는대 이른바 마음장상이다. 나는 정좌후 수초사이에 杳冥에 들어서 한조각 청허의 경계에 드는데 마음에 다른 찌꺼기가 없어진다. 나는 아침을 먹지않고, 하루에 고기 한근과 계란 대여섯개를 식사 대용으로 먹을 뿐이다.나의 스승 곽선생은 병중에 무료하여 이에 눈을 감고 정좌를 하여 마음이 맑아지고 망상이 끊어져서 병이 홀연히 없어졌는데 내가 대만에 오기전에 서안에서 최후로 한차례에 뵈었을 뿐이다. 그때 스승의 나이 비록 耆老였지만 정신은 정정하고 건강하기 걷는모습이 나는 것 같았다.이에 정좌의 효과는 진실로 일반사람의 상상하는 이상의 것이다.나의 좌법은 또한 움직임,가려움,차가움,따뜻함 의 네가지 변화가 있다.나의 법은 아울러 정한 방식이 없고 가지가지 나타나는 현상은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실로 선천성의 치병효과를 갖추고 있고, 무공은 그 다음일이다.나의 좌법을 종합해서 말하면 최고로 중요한 것은 두가지가 있다.1,매차의 정좌시간을 최소한 한시간정도는 해야 효과가 있다. 2,정좌할 때 어떤것도 생각하지 않고 일념이 바르게 해서 일체잡념을 배척하고 성품이 홀로 들어나게하여 완고한 공에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도법은 자연이라 나의 좌법도 이 최고의 원칙을 준수 하는 것이다. 추호도 억지로 하지말고 일체를 다만 그 자연에 맡기는 것이다. 사려를 잊고 끊는 것은 점차로 하는것이지 지나치게 치중해선 않된다. 생각을 끊고자 하는것도 생각이기 때문이다.절대로 마음이 개입하면 않된다. 연습이 오래되면 그 생각은 자연히 끊어진다. 내가 정좌할 때 그 생각들로 하여금 간섭하지 않고 다만 가슴을 텅비울 뿐이였다. 그래서 오랜후에 망념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이것은 참외꼭지가 떨어지듯 하는것인데 그 시기는 스스로 힘쓰는데 있다.정좌할때는 신체의 긴장을 풀고 머리도 긴장을 풀어야 한다.안을 살피고 밖을 살피는 것은 다 집착을 내는데 집착을 하면 마음이 고요해지지 않는다.마음이 고요해지지 않으면 어찌 능히 효과가 나오겠는가? 고요한경계에서 고요함을 읶히는것도 아름답지만 시끌러운 곳에서 공부하면 그 효과가 더욱 뛰어나다. 내가 대북영교노천 찻집위에서 하숙을 했는데 , 주위에서 물건을 사고팔고, 음악소리가 울리고 손님들이 웃고 담소하는소리가 주위에 가득했지만 이곳에서 정좌할 때 나는 그 소리를 듣지못했고 그 번거로운 것을 싫어하지 않았고 도리어 그 적당함을 기뻐했다.가히 시장바닥을 숲속으로 삼았고 숲속을 시장바닥으로 삼았더니 조용하고 조용하지 않음이 다만 그사람의 공력여부에 달려 있는것이다.어찌 환경의 허물로 돌릴수있겠는가? 단전에 열이 발생하거나 몸에 열이 생기는 것은 나는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앉아서 빛을 보거나 혹은 먼거리의 보이지 않는사람의 말소리가 들리는 것은 하나의 경계인데 수행자는 모두 관심두지 말아야 한다. 옛날 나의 스승 곽선생은 일찍이 거듭 그것을 경계했다. 나는 천주교인이라 살고죽는 문제에는 하늘에 맏기는 터라 장생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의 좌법은 경계가 끝이 없으므로 나중의 효과는 어떤지 잘못 알수가 없다.나의 좌법은 청년에 시작 했는데 나의스승이 항상 말하길 노년에 이좌법을 읶혀도 그 효과는 청년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나의좌법은 효과를 내는 기간은 일정하지 않는데 삼개월에 효과를 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몇 년이 지나여 비로소 나타나는 등 하나가 아니다.그러나 반응의 늧고 빠름은 있어도 결과와 효과는 동일하다.마음이 적적하여 움직이지 않고 , 감응하여 통하게 되는데 고요함이 극에달하면 반드시 통하게 되는 것이 이치가 원래 그러하다. 앉았을 때 자신도 모르게 권법을 구사하는 것은 족히 이상할것이 없다.그러나 마땅히 부드럽고,유연하게 가볍게하여 그 기틀을 살려야 한다. 지나치게 힘을 쓰면 문득 자연의 원칙에 어긋나게 된다.정좌이외에 내가 항상 문밖으로 산보를 하는데 이것은 내공,외공,동정을 배합하여 결함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나의 성품은 글과 책읽기를 좋아해서 매일 밤이 깊어야 비로소 잠을 자는데 대만 교회에서는 기간내에 교회회보를 정리하고 글을 교정하게되었다.이렀게 바쁘게 밤을새워서 일하길 일주일간을 잠을 자지 않았으나 추호도 권태감이없었는데 정좌의 공이 아니면 어찌 이럴수 있겠는가? 정좌할 때 호흡이 항상 발바닥에 있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이것이 장자가 말한 진인의 호흡은 발바닥으로 한다는 것이 아닌지? 몸에열이 발생하는 것은 처음에는 쉽지 않지만 오래오래 하여 노력하면 열이 생긴다.그러나 이런 것은 수련중의 한종류의 경계일뿐 공부의 목표는 아니다.
參證
신부의 공부는 무위법이다. 일반적으로 규를 지키는 공부와는 같지않다. 이것에대해 내가 들은 바를 네가지를 부록으로 실었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1.설세량 선생의 말씀: 신부의 공부는 최고의 원칙은 생각을 잋고,사려를 멈추어서 몸과마음을 평안히 하는데 있다. 내가 법다히 수행한지 하루밤에 조는 것 같으나 졸지않은 상태에서 홀연히 음교일대에 따뜻해지면서 가렵고, 쾌감이 생기는데 이것은 남녀의 교구보다 백배는 더했다.이기운이 뒤로 척추를 오르고 앞으로 가슴앞을 내려서 용천,니환으로 순환하는데 이후에는 매번 좌선을 할때마다 곧 담연해져서 쉽게 정에 들어갔다.2.임극일 선생 말씀:우리 촉의 남윤현일대에 도인 이옥봉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나이가 백칠십여살인데 제자가 심히 많았다.이사람도 무위법을 전했는데 기틀을 잊고 망념을 끊는 것은 신부의 공법과 서로 비슷했다.몸이 가볍기가 낙엽과같아서 하루는 백장이나 되는 높은 절벽에서 떨어졌는데 한군데도 상한곳이 없었다.
2.나의 선친 임점규 인데 신체가 허약하여 삼십세 이후에는 직업을 감당할수없었서 부득이 사표를 내고 집으로 귀향하고 이에 백여세의 도인 양태허의 문을 두드렸다. 양이 또한 무위법을 전하였는데 그법이 신부의 공부법과비슷했다. 정좌할때에는 망념이 일어나면 지혜로서 그것을 끊어서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것인데, 정좌방식에 억메이 않았고,행주좌와에다 그것을 행했다. 나의 선친은 보면 하루종일 묵묵히 앉아있거나 글을 쓰거나 혹은 산보를 할뿐이였다. 그것을 수행한지 십여년에 신체가강건하였고 하루저녁에 홀연히 일양이 생겨서 일체병이 모두 소멸되었고 몸이 두루 평안해졌다.
나의 부친의 평소 언행을 기억해보면 정좌할때는 마음은 멈추어 있는 물같이 된연후에야 비로소 눈을 감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陰寒의 증에 걸리면 쉽게 치료할 수가 없다고 하셨다. 또 말씀하시길 정좌라는 것은 방만한 마음을 거두어들이는데 있고, 그자연에 맡겨서 집착하지 않는것이라고 했다. 집착한즉 알묘조장이라 그 묘가 아직 자라기도 전에 뽑는것과도 같다고 하셨다.
3.갈무계선생경험담: 갈선생 또한 생각을 잋고, 망념을 끊는 공부를 하였는데 아직 일년이 지나지 않아서 범식이 문득 끊어지고 삼년에 새지 않게 되었으며 머리카락이 다시 자랐는데 이것은 단지 그 초보 공일뿐이다.
4.축명도 선생 말씀 [나이가 고희이지만 안색이 환하고 한번 보면 그 도를 지닌 사람임을 알수가 있다] 갑진년 여름에 하루저녁 내가 진선생돈보의 거처에서 축선생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는데. 말씀하시길 " 전쟁중에 촉에 있으면서 양사부에게 도를 배웠는데 양사부가 제자를 가르치는 정좌법은 몸안에 어느 한규를 지키게 하지 않고 단지 몸밖의 삼척안을 응시하게 하되 잠들때만 안을 보게 할뿐이다. 또 사부가 말씀하시길 '수행자의 좌선은 가장 중요한 것은 靜定이다. 능히 정정에 들수있다면 공부는 자연히 전진 할것이다'라고 하였다"
5.뇌일봉선생의 自由談은 월간 16권8기에 있는데 유가술의 철학적 분석에 대해 발표하였다.거기에서 유가술을 여덟단계로 나누었는데 설명하자면 아래와 같다.
그 여섯 번째 단계는 주의를 집중하여 한곳에 모으는 것이다. 그 한곳은 혹은 소리,호흡,사물,코끝,혹은 단전등인데 그 훈련방법은 1.자세를 단정히 하고,2.눈을 크게 뜨고 응시하되 눈동자를 움직이지 않게 하고,눈동자에 주의력을 집중한다.눈을 감을때는 주의력을 코 끝에 둔다. 혹은 단전,미간위등,3.혀끝은 윗턱에대고,신을 편안히 하여 호흡을 멈춘다.
일곱 번째는 생각을 고요히 비우는것인데 생각을 비운다는 것은 무념 무상 무심을 가르킨다. 바꾸어 말한다면 대상과 완전히 한조각을 이루는 것이다. 이것이 의식을 집중하므로 무심의 경계를 요달하는 것이다.즉 정좌로 시작해서[생리 해부의 완전 조화]선정[심리의 조화]에 들어서 무심의 경계를 요달하는 것이다. 여덟 번째 단계는 법열인데 이지경에 도달하면 자기를 통째로 잋고, 단지 하나의 대상에 光芒을 투사하고, 우리의 의도는 신아일체가 되고 물아일여의 최고 경계가 되는 것이다.[이것은 중국의 선도와 같은 이치인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선도는 인도 유가술에 비해 그경계가 더욱 높고 그 전하는 법은 더욱 비밀에 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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