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화담 문집, 해제
서화담 문집의 편찬과 전래
"서화담문집"은 서경덕이 죽은 뒤그의 문인인 박민헌(朴民獻). 허엽(許曄)등이 그의 시와 문장을 수집하여 간행하므로서 세상에 첫선을 보였었다.그러나 이것은 임진왜란을 겪는 동안에 없어져버렸다.
그러나 선조(宣祖 38년 1605년 은산(殷山)의 현감 홍방(洪방(雨滂)이 서경덕 학문을 숭상하여 그 문집을 널리 구하던 나머지 마침내 윤효선(尹孝先)의 발문(跋文)이 붙은 사본으로 된 유고(遺稿)를 얻게 되어 이를 출판하였다. 이것을 보통 1605년 乙巳년이어서 을사은산본(乙巳殷山本) 일책이라 부른다.
윤효선의 발문은 선조 34년(1601년)에 쓰여진 것인데,그는 발문에서 다음과 같이 다음과 같이 화담집의
전사(傳寫)한 경위를 쓰고 있다.
전란을 겪는 동안 서적들이 많이 없어져 다시는 선생(서경덕)의 저술을 볼 수 없으리라 여기면서 애통해 하였었다. 그러다 아드님 용담공(龍潭公)에게 유고를 구하였더니 한권의 시와 문장이 담긴 책을 보내주었다.그것은 선생의 문인 박민헌과 허엽이 수집한 것이었다. 용담공은 어려서 선생을 여의였으므로 이 곳에 거둬들이지 못하고 없어진 것도 많을 것이라 하니 애석하기 짝이 없다.기왕 지난 일이야 어쩔 수 없으니 앞으로나 잘 전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마침내 민유청(閔惟淸)동지에게 전사(傳寫)하도록 요청하였다.그것을 아끼며 읽고 공경하며 간직하면서 문화계의 영원한 보배로 여기고 있다.
그러니 윤효선의 사본도 서경덕이 죽은지 50여년만에 이루어진 것이다.
이렇게 간행된 문집이 오랫동안 서경덕의 학문을 받들던 개성(開城)의 화곡서원(花谷書院)에 보존되어 있었다. 그러나 판면이 희미해져 개성의 여러 선비들이 이 문집을 다시 간행할 것을 계획하게 되었다.
그 결과 진사(進士) 한명상(韓命相).마지광(馬之光). 채위하(蔡緯夏)등의 주간으로 영조(英祖)46년
(1770년 경인(庚寅)에 일책으로 된 새로운 문집이 세상에 나왔다.이것은 보통 영조경인개성본(英祖庚寅開城本)이라 부른다.
그 판각의 대본은 영조28년(1752)김용겸(金用謙)이 새로운 "서화담집"의 편차를 정리하여 손으로 베껴두었던 것을 사용하였다. 그 내용을 보면 모두 네권(4卷)으로 되어 있는데
첫째권에는 부(賦)와 시(詩)
둘째권에는 소(疏). 서(序).명(銘).등의 산문
세째권에는 부록으로 연보(年譜)와 비명(碑銘)및 유사(遺事)
네째권에도 부록으로 사제문(賜祭文).서원상량문(書院上梁文).종사의(從祀義).증화(贈和)및 추모(追慕)의 시(詩) 문인록(門人錄)등이 실려있다.
다시 말하면 진짜 서경덕의 문집은 일권과 이권뿐이고 삼 사권은 서경덕의 참고 문헌을 모아 놓은 것이다. 그 밖에 책의 첫머리에는 원인손(元仁孫)의 서(序)와 윤숙(尹塾)의 서가 붙어 있고 끝머리에는
윤효선(尹孝先).김용겸(金用謙).홍방(洪방(雨滂).윤득관(尹得觀).채위하(蔡緯夏)의 등의 발문(跋文)이 실려있다.지금은 성균관대학 대동문화연구원에서영인(影印)한 이조초엽명현집선(李朝初葉名賢集選)에
개성본을 바탕으로 한 "화담선생문집"이 들어 있어 가장 구해 보기가 쉽다.
어떻든 윤효선(尹孝先)이 발문에 지적했듯이 우리가 지금 보는 "서화담 문집"은
서경덕의 완벽한 문집이 못되는 듯하여 서운한 감이 없지 않다.
김학주역 한국자유교육협회 발행에서
'서화담 문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관역우득수미음이시학역배제현(觀易偶得首尾吟以示學易輩諸賢)주역을 보다가 우연히 수미음을 얻어 역경을 배우는 여러분께 보입니다.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 (0) | 2023.03.02 |
---|---|
화담 서경덕의 생애 (0) | 2023.03.01 |
화담 서경덕(徐敬德)의 문인들(徐京德)의 문인(門人)들 (1) | 2023.02.27 |
원리기(原理氣) 화담 서경덕 (0) | 2023.02.26 |
리기설(理氣說) 화담 서경덕 (0) | 2023.0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