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전선사와 한유 그리고 홍련
중국 당나라때 한유(韓愈, 韓退之, 768~824)는 문장이 뛰어난 당송 8대가의
한 사람이며, 당헌종의 신임도 두터워서 한림학사라는 높은 벼슬에 있었지만,
헌종이 인도에서 부처님의 뼈사리를 모셔오는데, 크게 관심을 보여 동참하자,
그것을 비방하는 불골표(佛骨表)를 올려서 헌종의 미움을 받고, 장안에서
800리나 떨어진 시골 조주자사로 좌천되었다.
울분을 참지 못하고 술과 문장으로 세월을 보내던 한유는 조주에 훌륭한 태
전선사(太顚禪師, 732~824)라는 자가 있다는 말을 듣고, 그 스님을 타락시
켜 불교가 하찮은 것임을 밝히려고, 가장 젊고 이쁜 홍련(紅蓮)이라는 기생
에게 백일의 기한을 줄 것이니, 태전선사라는 중을 파계(破戒) 시켜라, 그렇
지 않으면 너의 목을 칠 것이니라 라고 했다.
홍련은 생각하기를, “그까짓 중하나 꼬시는데 뭔 100일씩이나 걸리나” 라며
우습게 생각하고는 예쁘게 단장하고 태전선사가 계시는 축륭봉으로 올라갔
다. 가서는 100일 기도를 하러 왔다고 말씀 드리고 태전선사를 유혹하려고
했지만 100일이 다 가도록 어쩌지를 못하고 오히려 태전선사의 수행에 감화
되었다. 마지막 날이 되자 겁이 난 홍련은 태전선사에게 예절을 갖추어 삼배
를 드리고 눈물을 흘리며, 사실은 제가 이곳의 자사인 한유의 명으로 큰스님
을 타락시키고자 왔는데, 오늘까지 타락시키지 못하면 저를 죽이겠다 하였습
니다. 큰스님, 제가 어찌하면 좋겠나이까?
그러자 태전선사는 홍련에게 하얀 속치마를 내어 펼치라 하고는 아래의 게
송(偈頌, 선시)을 써 주면서, “이곳 자사가 문장이 뛰어나다고 하니, 이 글을
보여주면 너를 죽이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홍련은 감사한 마음으로 예를
올려 작별하고는 조주자사인 한유에게로 가서 태전선사의 게송이 적힌 치마
를 펼쳐 보이니, 한유는 한 번 읽고는 감탄하면서 생각하기를 “과연 명불허
전(名不虛傳, 이름이 헛되이 전해지지 않음)이구나. 내 친히 가서 만나봐야
되겠다.”
십년불하축융봉(十年不下鷲融峰)
관색관공즉색공(觀色觀空卽色空)
십년 동안 축융봉을 내려가지 않고
색을 관하고 공을 관하니, 색이고 공일 뿐이었네.
여하조계일적수(如何曹溪一適水)
긍타홍련일엽중(肯墮紅蓮一葉中)
어찌 조계의 한 방울 물을
홍련의 한 잎새에 떨어 뜨리겠는가.
한유가 태전선사에게 가니, 선사가 묻기를 “어떠한 불교경전을 읽어보았습니
까?” “뭐 특별히 읽어 본 경전이 없습니다.” 그러자 태전선사는 “문장(학문)
으로 이름 높은 자사께서 어찌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으면
서 불교를 비난하셨습니까?” 그래서 한유는 자신의 잘못됨을 뉘우치고 태전
선사에게 귀의하고 독실한 불교신자가 되어 불교에 관한 문장도 많이 썼다
고 한다.
그러면 이제 위의 게송을 음미해 보자. 첫 번째 구절은, 태전선사가 머무르
던 곳이 축륭봉인데, 십년 동안 산을 내려오지 않고, 수행만 하셨다, 두 번째
구절은, “오온(색수상행식)에서 물질(몸둥이)인 색(色)을 관조(觀照, 관찰)해
보니, 인연(조건)을 따라서 뭉쳤다 흩어지는 것일 뿐, 독립되거나 영원히 불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이 텅 비었더라. 즉 공(空)이더라. 그래서 다시 空을
관조해 보니, 본래 아무 것도 없이 텅 비었던 것이 대상(조건)을 만나자 또
뭔가가 생기더라. 즉 色이 생기더라. 그래서 변화무쌍한 색과 공에 집착을
하지 않고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니 색은 色이고, 공은 空이더라”라는 것이고,
세 번째 구절의 조계(曹溪)는 육조혜능대사가 조계산에서 오래 법을 펴시며
머물렀기 때문에, 선종(禪宗)의 정법을 상징하고, 또 조계는 계곡이라는 의미
가 있으므로 <심산유곡의 맑고 맑은 청정한 한 방울의 물>로 남자의 정액
(精液)을 비유한 것이며,
마지막 구절은 홍련이라는 기생의 이름에 <붉을 홍(紅)>자 인데, 붉은 색은
옛날부터 음탕한 곳이고 청정하지 못한 곳이어서, 기녀들이 모여 살며 술 팔
고 웃음 파는 곳을 홍등가(紅燈街)라고 한다. 또 붉은 먼지라는 표현으로 홍
진(紅塵)이라고 하는데, 번뇌가 많고 지저분한 세속을 말한다.
그래서 십 년을 꼼짝 않고 수행하여, 色을 관하고 空을 관해보니, 색은 색이
고 공은 공이더라. (뭐 별거 없더라) 선종의 정법을 닦아서 세속의 집착이 없
는 내가 어찌 色과 空을 분별하고 집착하여 청정한 법신(法身) 더럽히겠는가.
라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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