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곡 정길 蘭谷 鄭佶의 蘭谷遺稿20 난곡유장(蘭谷遺庄) 보성 석호정(寶城 石湖亭) 석호정기(石湖亭記) 석호정기(石湖亭記) 석호산은 보성의 명산이다. 바로 그 남쪽으로 서로 마주 대하며 버티고 서 있는 것이 있으니 대룡산의 龍山亭이라 한다. 냇물이 서남쪽으로부터 흘러 들어와 석호산과 대룡산 사이를 뚫고 동쪽으로 흐르다가 북족으로 방향을 틀어 흐르고 있으며 강의 북쪽 가에 안적촌(安迪村)이 자리하였다. 조선 선조임금 때에 진사 난곡의 호를 가진 鄭公이 살았으니 공은 우리 고을의 賢人이다. 竹川 박광전선생을 스승으로 삼고 나의 선조 우산 안문강공과는 벗이 되어 임진왜란을 당해서는 함께 힘을 쓰시었다. 이미 난리를 겪고 나서 사서오경이 불에 타 사라져 버렸는데 공께서는 죽천선생의 아들인 만포공 박근효선생과 같이 서적을 인쇄하여 세상에 배포하니 배우려는 사람들에게 공이 또한 적지 아니하고 또한 돌아가신 뒤에 고을.. 2023. 2. 22. 성균생원난곡선생정공유장비(成均生員蘭谷先生鄭公遺庄碑) 성균생원난곡선생정공유장비(成均生員蘭谷先生鄭公遺庄碑) 석호산(石虎山) 아래 정강(程江)의 물가에 마을이 있으니 안적촌(安迪村)이라고 한다 아늑하고 깊숙하여 집터가 그윽하고 형세가 막히어 산에 가서 나물캐고 강에 나가 낚시질하며 가히 숨어서 살만하다. 옛날 宣祖 辛丑년 서기 1601년무렵에 난곡선생 鄭公께서 감절동(甘節洞)으로부터 이 고요한 것을 취하여 집터를 잡아 이사와 살면서 그가 거처하는 문 위에 蘭谷이라는 현판을 달고 글을 지어 그 뜻을 나타내기를 어렵게 살면서 초야에 뭍인지 36년이다 이름도 드러나지 않고 몸도 고을에 나다니지 않았으며 못에서 난초를 캐어 九원이나 되는 밭에다 심어 가꾸어 벗과 더블어 말 할 때에는 그 향기를 사모하고 시대에 나타나지 않는 그 그윽한 것을 사모한다고 하였으니 이로써 .. 2023. 2. 21. 불성사야음(佛成寺夜吟) : 관악산 불성사의 밤을 읊음, 난곡 정길. 관악산 불성사야음(佛成寺夜吟) 불성사야음(佛成寺夜吟) : 불성사의 밤을 읊음 천리이가객(千里離家客) 집 떠나 천리밖의 객이되어 선창영반신(禪창影伴身)선방의 선객들과 친구 되었네 파요해탕율(波搖海蕩율) 바다의 빠른 물살에 파도가 흔들리고 산수석인순(山瘦石인순) 높은 산봉우리 빼어난 바위들 수척해 보이는데 설리금비절(雪裏禽飛絶) 눈 쌓이니 새들도 날지 않고 운간승화신(雲間僧話新) 구름속에 스님들의 선문답이 새롭구나 야래종보효(夜來鐘報曉) 밤 깊어 종소리 새벽을 알리니 천지건양춘(天地建陽春) 천지에 따뜻한 봄 오리로다. (3) 유불성사(遊佛成寺) 불성사에 노닐면서 석경명공독자심(石徑鳴공獨自尋) 바위길 지팡이소리 내며 나홀로 찾아가니 창송낙낙동문심(蒼松落落洞門深) 푸른 소나무 늘어지고 동문이 깊네 빙동차문사하처.. 2023. 2. 18. 유삼각산기(遊三角山記) 난곡 정길 유삼각산기(遊三角山記) 삼각산 기행문 내가 반생을 거의 남쪽 강해(江海)에서 지냈으므로 산천을 감상하고픈 마음을 가슴에 늘 품어 왔는데 년전 추운 겨울에 별시(別試)를 보기 위해 조카를 데리고 과거에 응시 하였으나 되지 않아 나라의 빛나는 곳을 관광하기 위해 친구 6, 7인과 같이 도성 밑에 관악산 불성사(佛成寺)에 지냈는데 때가 섯달 끝이라 매서운 추위로 고적을 찾아 가기가 쉽지 않았다. 금년 정월 15일에는 안직재(安直哉)형제와 삼각산 도성암(道成庵)에서 글을 읽었다. 삼각산은 서울의 진산(鎭山)으로 다른 이름으로 솥을 엎어 놓은 모양이라 하여 복정산(覆鼎山)이라 하였으니 그것은 산의 형상으로 이름을 붙인 것이요 절은 연창위(延昌尉)가 창건(創建)하였는데 법행선사(法行禪師)가 도를 이룬 곳으로 도성암.. 2023. 2. 17. 이전 1 2 3 4 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