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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전

신라인 신선 김가기(金可記)

by 성천하지미미자 2023. 2. 21.

김가기(金可記)는 신라 때 사람으로, 중국 당나라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치르는 과거인 빈공과(賓貢科) 진사였다. 최치원도 빈공과를 치른 사람들 중 한사람이다.

김가기는 성품이 침착하고 도를 좋아하였으며 사치스러운 것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리고 복기(服氣-도가의 수양법)로 몸을 단련함을 스스로 낙으로 여겼다. 그는 박학하고 기억력이 뛰어났으며 문장을 잘 지었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용모를 지녔으며, 거동과 말함에 깊은 멋이 풍겼는데, 갑자기 과거에 발탁되었다.

그는 중국 종남산 자오곡에 있는 띠풀로 엮은 집에서 살고 있었는데, 은밀하게 숨어서 손수 기이한 꽃을 심고 이상한 과수를 많이 길렀다. 그는 늘 향불을 피우고 조용히 앉아 깊은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또한 그는 도덕경과 여러 신선경을 외우고 익히는 것을 중단하지 않았다. 그 후 삼년에 본국인 신라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넜는데, 그 후 다시 돌아와서 중국 종남산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남몰래 덕을 베푸는데 힘써 남들이 청하는 바가 있으면 처음부터 거절하지 않았다. 정확하고 부지런히 일을 하되, 남들과 함께 생활하지는 않았다.

당나라 선종2년 3월 김가기는 느닷없이 황제에게 상주하기를 "신은 옥황상제의 조서를 받자와 영문대의 시랑이 되어 내년 2월 25일에 하늘로 올라가야 하옵니다" 하였다. 선종(宣宗)은 매우 이상하게 생각하고, 내시를 파견하여 그를 궁내로 불러들이라고 하였으나, 김가기는 한사코 사양하며 나아가지 않았다.

그리고 옥황상제의 조서를 보자고 해도, 다른 신선이 관장하므로 인간 세상에는 없다고 거절했다. 선종은 드디어 궁녀 네 명과 향과 약, 금과 비단을 하사하고, 또 내시 두사람을 파견하여 시중들게 하였다. 그러나 김가기는 홀로 조용한 방 안에만 있어 궁녀와 내시가 대부분 접근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밤마다 노상 방 안에서는 손님들과 담소하는 소리가 들리어, 내시가 창 틈으로 몰래 들여다보니, 선관(仙官)과 선녀가 각기 용과 봉위에 앉아서 의젓하게 상대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궁녀와 내시는 너무 놀라게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2월25일에 봄경치가 아름답고 꽃들이 만발한데, 과연 오색 구름이 일고, 학이 울며 봉황이 날고, 생황, 퉁소, 금석악기의 소리가 요란하고, 깃뚜껑을 한옥으로 만든 수레와 온갖 깃발이 온 하늘에 가득한 가운데 김가기는 수많은 무리들의 부축을 받고 하늘로 올라갔다. 이때 조정의 여러 사대부와 서민들 중에 구경꾼이 산골을 메꿔, 예의를 갖추고 바라보며 경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위의 이야기는 중국 서적인 열선전(列仙傳)태평광기(太平廣記) 권53권의 김가기 전기를 그대로 옮긴것이다.

登唐科第語唐音 당나라 과거에 급제하고 당나라 말을 하나
望日初生憶故林 해가 뜨는 곳을 바라보고 고향을 그리워하네.
鮫室夜眠陰火冷 교실(鮫室)에서 밤을 자는데 음화(陰火)가 썰렁하고
蜃樓朝泊曉霞深 신기루가 아침에 머물고 저녁엔 안개가 자욱하다.
風高一葉飛漁背 바람이 높은데 일엽편주는 물고기의 등위로 날아가고,
湖淨三山出海心 호수는 고요한데 삼산이 바다 복판에서 떠오르네.
想把文章合夷樂 생각건대 문장을 동이의 음악에 맞추면서
蟠桃化醉人蔘 반도(蟠桃)꽃 속에서 인삼에 취하리라.
- 당나라 장효표의 送金可記歸新羅 -

사림광기(事林廣記)를 상고해 볼 때 천하의 도사들은 가기가 승천하는 날 모두 하늘의 복을 빌었다 한다. 천하사람들은 아녀자, 어린애라 하더라도 김가기가 참신선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런 도가 서적을 좋아하지 않아 전하는 게 없다. 그래서 김가기의 이름조차 모른다. 중국사람들이 김가기에 대해 물으면 아무것도 대답을 할 수 없으니, 이 또한 부끄럽지 않은가?

   

 

 

 

 

 

무극진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