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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전

북파오조北派五祖 해섬자 유해섬 海蟾子 劉海蟾)

by 성천하지미미자 2023. 2. 21.

재상 벼슬에 오르다

연나라 땅 廣陵광릉 출신인 劉玄英유현영은 처음 이름이 操조였으며, 호를 海蟾子해섬자라고 하였다. 세상 사람들은 흔히 호인 "해섬"을 이름 대신하여 "劉海蟾"유해섬이라 부른다. 그는 당나라가 망한 후인 五代오대 시기에 살았다. 어려서부터 일심으로 功名공명을 구하였는데, 진사시험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나아갔다.

당시 燕나라를 다스리던 劉守光유수광 밑에 들어가 宰相재상이 되었다. 세상이 혼란하였던 오대 시기는 지방의 군벌들이 割據할거하여 스스로 패자임을 자처하며 천하 쟁패를 다투던 시끄러운 때였다. 유수광도 그 당시의 藩鎭軍閥번진군벌이었다. 유수광은 당나라 말기 군벌이었던 劉仁恭유인공의 아들이었는데, 아버지의 妾첩을 취하였다가 축출되었다.

나중에 이 유수광이 자칭 盧龍노룡절도사가 되어 병사를 거느리고 幽州유주(현 북경지역 일대)를 공략하였다. 이때 그 아버지를 구금하고, 라이벌이었던 형을 제거하였다. 주변 세력들을 협박하여 자신을 尙書令상서령, 尙父상보로 추대토록 하였다. 乾化건화 원년(911) 유수광은 스스로 大燕皇帝대연황제가 되었고, 연호를 應天응천으로 고쳤다. 이 시기에 유해섬은 유수광 밑에서 재상을 지내면서 포부를 펼쳤다.

어느 날 하루 모처럼 한가한 시간을 틈타 유해섬은 손에 도가서적을 들고 읽고 있었다. 갑자기 문지가가 들어와서 보고를 올린다. "홀연히 기묘한 모양을 한 도인 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손에는 부채를 들고 있으며, 붉은 얼굴에 구레나루가 무성한 도인인데, 재상어른을 뵙고자 합니다."

계란과 엽전으로 탑을 쌓다

유해섬은 "모시고 오너라."한다. 유해섬은 잠시 후 나타난 그 도인을 상석에 앉히고 서로 마주하였다. 심부름하는 아이가 가져온 고급차를 서로 한 모금씩 마셨다. 유해섬은 물었다. "묻겠사온데, 도장의 존함은 무엇이며, 오늘 이렇게 방문한 용무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그 도인이 "貧道빈도는 正陽子정양자라고 합니다."한다. 그리고 나서 그 도인은 유해섬에게 淸靜無爲청정무위란 무엇이며, 또 신선술인 金液還丹금액환단의 선도법에 대해 한바탕 강의를 한다. 말을 마친 후 그 도인이 유해섬에게 특별히 계란 10개와 엽전 10개를 요구한다.

이에 유해섬은 마음속으로 이러한 물건은 시장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흔한 것인데, 하필 재상가에 와서 요구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면서 몹시 의아해 한다. 그러나 사소한 일이므로 더 이상 묻지 않고 동전 10개와 계란 10개를 가져오게 하여 그 도인 앞에 갖다 놓았다.

그 도인은 아무 말도 없이 손으로 엽전 하나를 집더니 찻상위에 놓는다. 그리고 계란 하나를 들고는 엽전위에다 수직으로 세운다. 이어서 다시 엽전 하나를 집어 수직으로 세운 계란위에 놓는다. 이렇게 엽전과 계란을 하나씩 쌓아 올라간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유해섬은 계란이 무너져 깨어질까 염려되어 마음속에 조바심이 바짝 일어났다. 그 도인은 매우 빠르게 엽전 10개와 계란 10개를 교차하여 위로 쌓아 올렸는데, 10개를 위로 쌓아 올리자 마치 한 개의 寶塔보탑과 같았다. 이때 유해섬은 자신도 모르게 탄식한다. "이것은 너무나 위태하구나!"

재상을 사직하고 천하를 편력하다

그 도인은 유해섬을 향해 전혀 그렇지 않다는 듯이 빙그레 미소 짓더니 "이 엽전과 계란을 쌓은 것은 그리 위험한 것이 아니다. 한 개인이 功名공명과 福祿복록에 있어서 최고위에 이르렀을 때 우환과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당신이 처한 처지가 계란과 엽전으로 높게 쌓아 올린 이 탑보다 더 위험하다!" 한다. 말을 마친 그 도인은 손을 들더니 "엽전과 계란으로 쌓은 보탑"을 슬쩍 건드리자 차탁자 위로 보탑이 와르르 무너진다.

그 도인은 흩어진 엽전 하나를 손에 줍더니 가볍게 한번 누르자 무른 떡과 같이 반으로 쪼개진다. 엽전 부스러기를 창밖으로 던지고는 몸을 일으켜 이별을 고한다. 유해섬은 그 도인을 전송하고 서재로 돌아와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다가 갑자기 퍼뜩 깨달았다.

이날 밤 유해섬은 집안사람을 불러 모아 놓고 잔치를 베풀었다. 그리고 그간 집안에 모아놓은 모든 재산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다음날 유해섬은 병을 핑계삼아 宰相印재상인을 풀어놓고 미련 없이 조정을 떠났다. 집에 와서 道士도사복장을 하고 집을 떠나 이름난 산을 두루 편력하기 시작했다.

이때 유해섬의 발길이 미친 곳은 秦川진천, 華山화산, 終南山종남산 일대였으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수련에 힘썼다. 스스로 호를 "海蟾子"해섬자라고 하였으며, 나중에 우연히 신선 呂洞賓여동빈을 만나 金丹秘訣금단비결을 전수받았다. 유해섬은 이 비결에 따라 정심 수련하여 득도하였다. 張無夢장무몽, 種放結종방결 등과는 方外방외의 벗이 되었으며, 화산에 은거해 있던 希夷희이 陳?진단 선인을 찾아가 "分形散景"분형산경의 神을 변화시키는 선술인 神變仙術신변선술을 배웠다.

분신을 하여 세 곳에 동시에 나타나다

유해섬이 담주 鳳凰山봉황산에 은거하고 있을 때 천지를 진동시킬 만한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즉 동일한 날짜 같은 시간에 유해섬이 3개 장소에서 동시에 나타난 것이다.

첫 번째는 담주의 도관 壽寧觀수녕관에 나타나 20구절의 옛 시를 쓰고, 자신의 초상화 하나를 그렸다. 또 큰 글씨로 "龜鶴齊壽"귀학제수라고 쓰고, 말미에 한가한 백성 劉玄英유현영(해섬의 본명)이라고 낙관하였다.

두 번째는 봉황산의 來儀觀래의관에 나타나 자신의 초상을 그렸으며, 큰 글씨로 날아가듯이 "淸安福壽"청안복수 넉자를 썼다.

세 번째는 성도의 靑羊宮청양궁에 나타나 큰 글씨로 "壽山福海"수산복해 넉자를 일필휘지로 썼다고 한다.

수녕관과 래의관은 두 도관 사이가 60여리 떨어져 있어 어쩌면 그럴 수 있다고 하나, 성도의 청양궁은 수 천리나 떨어져 있으므로 도무지 세상 사람들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유해섬이 동일한 시간, 다른 곳에서 동시에 나타나 그림과 글씨를 쓴 것이야말로 바로 "분형산경"의 神秘莫測신비막측한 선술이었다.

후에 유해섬은 좌선하여 尸解仙시해선을 하였는데, 한줄기 하얀 기운이 머리꼭대기에서 뿜어져 나오더니 한 마리 白鶴백학이 되어 하늘로 날아갔다고 한다.

중국민간에서는 "劉海戱蟾"유해희섬을 제목으로 하여 그림을 그렸는데, 이것을 年畵년화 즉 歲畵세화로 설날 실내에 붙이는 그림으로 삼았다. 사람들은 설날을 맞아 이것을 집에다 붙여 새해의 복을 빌었다. 이 그림에서 "劉海"유해는 蓬頭亂髮봉두난발의 머리와 다리를 드러내 놓고 낄낄대며 웃고 있는데, 한손에는 가지와 잎이 달린 복숭아를 들고 있다. "戱蟾"희섬이라 하여 다른 한손에는 다리 3개를 가진 두꺼비를 잡고는 장난을 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유해섬은 후에 北五祖북오조로 받들어졌다. 중국 도가에는 크게 남북 2개 파가 있는데, 남북을 구별하여 흔히 北派북파 五祖오조와 南宗 남종 五祖오조라고 한다.

북파의 오조는 東華帝君동화제군·鍾離權종리권·呂洞賓여동빈·劉海蟾유해섬·王重陽왕중양이고, 남종의 오조는 張紫陽장자양·石杏林석행림·薛道光설도광·陳楠진남·白玉蟾백옥섬이다.
 

출처 : 기공과 기치유
글쓴이 : 조화도술 원글보기